[동북아 新패러다임-日 집단적 자위권 해법] 권철현 전 駐日대사 “日 재무장은 이제 시간문제…”
입력 2013-12-10 01:38
“미국이나 유럽,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을 수용하는 입장을 보이는 것은 일본 외교의 승리다.”
권철현 전 주일 대사는 지난달 29일 국민일보와 가진 창간기념 인터뷰에서 일본이 과거 침략을 부인하고 위안부 문제, 주변국과의 영토분쟁 등 갈등 요소가 많은 상황에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지지를 넓혀가고 있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설명이다.
권 전 대사는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의 국내적인 요인과 동북아의 급변하고 있는 정치안보 상황의 반영”이라고 말했다. 지난 20년간 일본은 경제적 침체와 정치적 리더십 약화에 따른 국내 정치 혼란, 지진과 해일, 후쿠시마 원자로 사고 등 같은 대형 재해와 사고로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집단적 자위권은 붕괴된 일본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 인식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자민당은 이런 국면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집단적 자위권을 강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 전 대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아베노믹스’가 성공하고 있는 것도 집단적 자위권 추진에 힘을 주고 있다고 봤다. 그는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다면 집단적 자위권 추진도 난항을 겪었을 것”이라며 “경제 회복 기미가 보이자 일본 국민들은 아베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북아의 안보 상황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수용하는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는 것으로 봤다. 우선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의 위협이 점점 더 커지고 있고 중국의 급속한 경제·정치·군사적 팽창은 동북아에서 미·일이 중심이 됐던 기존 질서를 흔들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이 국방예산 삭감 등으로 이 지역에 대한 군사적인 부담을 줄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닌사(南沙)군도 등의 영토 문제로 이들을 압박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미국을 대신해 견제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는 이유다.
미국 역시 아시아에서 일본의 역할 확대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군사대국화를 막아줄 수 있는 곳이 일본밖에 없다고 보고 있어서다. 권 전 대사는 “미국은 한국이 중국에 지나치게 가까이 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며 “이 때문에 한국에 중국 견제 역할을 맡길 수는 없고 일본을 적극 지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변국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점은 지속적으로 강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과 달리 독일이 2차 세계대전 후 재무장하고 최근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하는 등 해외 군사활동 재개가 가능했던 것도 주변국과의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고, 이를 믿을 수 있도록 행동했다. 반면 일본은 여전히 주변국들의 의구심을 없애지 못하고 있다.
권 전 대사는 이런 일본이지만 우리의 국익과 동북아 안정을 위해서는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 관계자들에게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일본이 중국보다 훨씬 더 중요한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사에 대한 왜곡 등 일본의 행태는 잘못되고 미운 점도 많지만 그래도 동북아 안정을 위해서는 양국이 서로 협력해 해결해야 하는 사안들이 적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는 ‘최고의 외교관이자 최후의 외교관’인 대통령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2011년 6월에 3년2개월간의 주일 대사직을 마친 권 전 대사는 현재 통일외교안보 및 북한 분야에서 손꼽히는 싱크탱크인 세종연구소의 재단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일 대사 재직 시 1205권에 달하는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이뤄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권 전 대사는 저서 ‘간 큰 대사, 당당한 외교’에 협상 과정을 소상하게 기록했다. 아쉬웠던 것은 재일 한국인의 지방참정권을 확보하지 못한 일이다. 내년도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권 전 대사는 “앞으로 동북아 정세는 거센 풍랑이 예상돼 어느 때보다 정교한 외교정책이 필요하다”며 “한·일관계 복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