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회 만들기 이렇게] “청소년들의 무너진 윤리의식… 사회 만연한 부패 때문”

입력 2013-12-10 01:34


청소년 정직지수 조사… 안종배 흥사단 윤리연구센터장

지난 10월 10일, 다소 충격적인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청소년들이 “10억원이 생긴다면 1년 정도 감옥에 가는 것도 괜찮다”고 답했다. 한 청소년은 “요즘 같은 시대에는 3년 안에 1억원 모으기도 힘들다. 10억원 준다면 당연히 1년 정도는 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초·중·고교생 2만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 설문조사에서 ‘이웃의 어려움과 관계없이 나만 잘살면 된다’고 응답한 학생도 36%나 됐다. 청소년의 윤리의식이 심각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기업 총수들이 수백억원을 횡령해도 제대로 처벌받는 경우가 없고 감옥에 간다 해도 몇 년 안 돼 나오는 게 태반인데 학생들이 뭘 보고 배울까”라는 한 네티즌의 말처럼 청소년은 우리 사회의 윤리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일 뿐이다.

원칙이 지켜지면서 소외된 이들을 배려하는 ‘착한 공동체’. 이를 만들려면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제도와 법을 만드는 노력에 앞서 사회 구성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은 사회의 거울”

설문조사를 주관했던 안종배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동숭동 ‘기술인문융합창작소’에서 만난 안 센터장은 “희망을 찾고 싶어 조사했는데 결과는 전혀 달랐다”고 털어놨다.

안 센터장이 청소년 정직지수 설문을 시작한 계기는 한국의 낮은 부패지수 때문이었다. 한국은 국제투명성기구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부패지수에서 45위였다. 2009년과 2010년 29위를 기록하다 2011년 43위로 급락하는 등 최근 4년간 한 번도 순위 상승이 없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는 27위를 기록했다. 최하위권이다. 그만큼 부패에 엄하지 못한 사회란 증거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 센터장은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은 어떤지 궁금했다고 한다. 청소년이라도 제대로 된 의식을 갖고 있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조사 결과는 안 센터장의 예상을 크게 빗겨갔다. 우리 청소년은 배금주의에 물들어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낮았다. 자기 이익을 위해선 편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92%가 ‘시험에서 커닝을 하면 안 된다’고 답하면서도 78%는 ‘친구의 숙제를 베껴서 내는 것은 괜찮다’는 모순된 답변을 내놨다. 안 센터장은 “친구 숙제를 표절하는 건 발각돼도 커닝만큼 처벌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편적 윤리 대신 자기 맞춤형 윤리 잣대를 갖고 있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았다. 정직하지 못한 것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약했다. 인터넷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베껴 숙제로 내지만 죄책감은 없다. “다들 그렇게 해요”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시험 점수를 잘 받는 친구라고 해서 그 친구의 윤리의식이나 도덕적 소양이 높은 것은 아니었다.

“결과만 중시하는 풍조”

안 센터장은 청소년의 도덕적 결핍이 우리 사회에 대한 학습효과에서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직보다는 거짓으로 위기를 넘기고, 편법으로 이익을 추구하고, 절차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풍조가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를 보면 큰 죄를 짓고도 실제로 죄에 비해 가벼운 처벌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잠시 감옥에 갔다 온다 하더라도 부당 이익으로 취한 부를 갖고 그 뒤 삶을 풍족하게 사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에서 저질러지는 부정이 심각한 타격으로 이어진다면 청소년도 이를 해선 안 될 일로 규정할 텐데 그런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은 일부 연예인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도박, 마약, 탈세 등 죄를 짓고도 6개월 정도 쉬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활동하는 모습에서 청소년은 ‘이런 잘못을 저질러도 이 사회에서는 통용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안 센터장은 “순간적인 잘못이 드러나도 사회적으로 큰 제재가 없으니 잘못에 대한 희석만 강화될 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정부 차원의 노력 절실”

안 센터장은 청소년 정직지수 조사 후 청소년의 윤리의식 개선을 위한 정책 세미나를 준비했다. 정부의 4개 부처에 협조를 요청했다. 다양한 부처가 협력해 청소년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도덕·윤리 의식을 올바르게 형성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세미나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안 센터장은 “일부 부처는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식의 반응을 했다”며 “정부의 위기 인식과 적극적인 참여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학교에서도 윤리나 도덕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제한적이다. 현재의 교육은 시험을 치르기 위해 답을 내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안 센터장은 특히 초등학생과 고교생의 정직성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입시 위주 교육으로 청소년의 도덕의식이 황폐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직지수 조사에서 ‘참고서를 빌려주기 싫어 친구에게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항목엔 초등학생 26%, 중학생 42%, 고등학생 46%가 ‘그렇다’고 답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초등학생과 중학생 사이에는 큰 격차가 나타났다. 청소년들이 상급 학교로 진학할수록 입시경쟁 체제에 매몰돼 친구를 경쟁자로만 인식하는 단적인 예가 될 수 있다.

“문화·미디어 연계된 체험교육필요”

안 센터장은 청소년 윤리의식 개선엔 문화·미디어 연계 교육이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범정부 차원에서 클린 콘텐츠가 많이 생산돼야 한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체험과 콘텐츠를 통해 마음으로 윤리·도덕을 느끼는 교육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 세대가 문화를 소비하는 거대한 축으로 부상한 데다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것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안 센터장은 모범이 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직하게 성공한 사람들을 발굴하고 또 조명해야 한다”며 “이런 사람들이 모범이 되고 전형이 된다”고 강조했다. 안 센터장이 매달리고 있는 클린콘텐츠국민운동은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 있다. 건전하고 유익한 클린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남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안 센터장은 가정의 역할도 강조했다. 자녀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 으레 가정에서의 소통은 거의 사라지고 집은 잠자는 곳이 되는 현실을 의식적으로라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체험교육이 시작되려면 학교도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안 센터장은 “경북 안동의 한 고등학교는 한 학기에 두 번 정도 가족이 손을 잡고 문경새재길을 걷는 체험교육을 한다”며 “길을 걸으며 대화를 하고 식사도 하는 등 가족의 소통을 위해 힘쓴다”고 말했다.

안 센터장의 바람은 한 가지다. 점점 무너져가는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것. 그 속에서 건강한 의식과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보여주는 것. 이를 통해 사회의 거울인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이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