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회로 가는 톨레랑스] 생각의 차이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 가져야
입력 2013-12-10 01:47
‘갈등의 시대’에 절실한 ‘관용 정신’
한국 사회에 ‘착한 사회’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열된 채 갈등과 증오를 키우기보다 서로를 인정하고 상생하는 시대적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착한 사회 공감론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착하다’는 말을 본디의 뜻과 다르게 사용한다. ‘어수룩하다’ ‘속기 쉽다’ 같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산업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굴곡진 근·현대사는 언어조차 제 뜻을 올바로 지니지 못하게 했다. 광복과 함께 시작된 이념 대립은 사회 집단을 두 패로 가르는 벽이 되었다. 흑백론은 이념의 장(場)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곳곳에 스며들었다. 차이를 우열(優劣) 또는 승패 문제로 바라보는 가치 전도가 일어났다. 착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건 동화에서나 있는 일쯤으로 치부됐다. 압축성장의 개발시대를 관통했던 성공논리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풍토를 낳았다.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도 성공하면 그뿐이라는 가치관은 성장 이면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사회지도층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찌 보면 더했는지도 모른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냉소가 퍼졌다. 부정부패를 합리화하는 문화는 그렇게 반세기 이상을 흘러 왔다. 착한 것을 갈구하는 민족의 DNA는 사라지지 않았다. 정의에 대한 목마름, 갈등 사회에 대한 반성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월가 탐욕이 초래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성찰의 계기가 됐다. ‘정의란 무엇인가’ 책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고, 경쟁의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 아닌 화합의 ‘유러피언 드림(European dream)’이 회자되고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대선 이슈가 됐다. 정의, 차이 인정, 공동선 추구 같은 개념이 확산되는 것은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절실한 가치임을 보여주는 현상들이다. 그래서 주목되는 게 관용과 다양성을 위한 ‘톨레랑스’, 정의와 나눔을 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다. ‘언행이 곱고 바름’을 뜻하는 착함은 정의와 관용, 배려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의 말에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가 했다고 알려진 톨레랑스(관용)에 관한 가장 유명한 문장이다. 나와는 다른 상대를 용인하는 태도는 사회갈등이 건강한 수준에서 유지되도록 기능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은 우려의 수준을 넘어섰다. 갈등과 대립이 구조화·일상화된 단계로 진화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전쟁 같은 갈등=서강대 전상진 사회학과 교수는 “상대방을 대화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고 ‘저들은 나를 찍어 누르려는 사악한 적’으로 규정하는 상황이 됐다”며 “이는 상대방을 오퍼넌트(Opponent), 즉 정적 개념보다 한발 더 나아간 사탄, 악마로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민주주의에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툼을 벌이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이걸 ‘악마와 우리 편’ 식으로 선을 그어버리니 갈등이 해결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구속, 박창신 원로신부의 발언을 둘러싼 대립 등은 우리 사회를 ‘종북 대 공안’이라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 몰아넣었다. 밀양송전탑 건설, 제주 강정 해군기지 사업 등 대규모 국책사업, 성남시 분당 성남보호관찰소 이전과 인천 출입국지원센터 개관을 둘러싼 정부와 주민 간 갈등도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 등 국내 체류 외국인이 150만명을 넘기면서 먼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됐던 인종 간 갈등도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일상으로 침투한 복합 갈등=경기개발연구원 이재광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갈등의 사회학’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사회적 갈등이 확장되고 중첩되면서 일상생활까지 침투해 개인의 삶을 황폐화시킨다는 내용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기존 이념과 지역 대립을 넘어 일자리, 세대, 남녀 등 새로운 갈등 영역으로 확산되고 뒤얽히는 ‘복합생활갈등사회’가 됐다고 규정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념 갈등이 일상으로 파고들어 왔다는 점이다. 진보성향의 김모(30·여)씨는 인터넷 디시인사이드 사이트에서 고(故)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5·18 광주항쟁 등을 두고 보수성향의 백모(30)씨와 논쟁을 벌였다. 지난 7월 백씨가 김씨를 찾아가 살해했다. 이 위원은 “이념갈등이 인터넷, 게임, 대중스타 심지어 마을공원의 동상 건립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사안에까지 광범위하게 파급되고 있다”며 “사회적 갈등이 위험한 단계로 진입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무능=정부와 정치권은 갈등 해결에 속수무책이거나 미숙한 대응을 되풀이하고 있다. 경희대 이택광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사회갈등은 정치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진단한 뒤 “의회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오히려 일반 기업보다 해결능력이 떨어져 보인다”고 말했다. 이명박정부에서는 사회적 갈등 구조 해결을 위해 사회통합위원회를 설치했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활동이 종료됐다. 박근혜정부도 ‘국민 100%의 통합’을 기치로 내걸고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전 정권과 차별성이 없고 목표가 비현실적이라는 우려만 나오는 형편이다.
◇다시 호출되는 톨레랑스의 가치=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고, 어린 세대들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 교수는 “상대편에서 의혹을 제기했을 때 그런 의혹을 인정하고 구체적인 조사나 사실관계를 따지는 식의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대방이 제기하는 의혹을 무조건 음모로 몰아세우기보다는 먼저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해결책을 논의하는 톨레랑스의 정신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서울대 곽금주 심리학과 교수는 “관용이 부족한 현재 기성세대들은 부모나 사회로부터 자연스럽게 차별의 언어들을 배웠다”고 진단했다. 분단국가라는 현실 때문에 우리 국민은 ‘착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쉽게 편을 가르는 심리가 있다. 단일민족이라는 사회적 관념은 자신과 다른 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집단주의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관용의 정신을 적극적으로 교육받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편가르기와 대립의 특성은 다음 세대로 유전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다. 캐나다에서 시작된 ‘공감의 뿌리(roots of empathy)’ 운동은 톨레랑스 교육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1996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공감의 뿌리 운동은 뉴질랜드, 호주, 미국 등지에서 5만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감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 1년 미만의 아기를 유치원과 초등학교 현장에 정기적으로 초대해 아이들은 아기의 성장과정을 바라본다. 아이들은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와 공감한다. 프로그램 전후로 공격행동이 60% 이상 감소했고, 공감교육이 대중화된 캐나다에서는 최근 10년 동안 집단 괴롭힘이나 따돌림 현상이 90% 감소했다고 한다.
이진배 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 회장은 “다름을 인정하는 톨레랑스는 민주사회의 기본원칙이지만 우리 사회는 그동안 이를 함양할 겨를이 없었다”며 “교육과 시민운동 등을 통해 지금부터라도 관용을 체화시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현수 나성원 문동성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