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배운다-전문가 기고] “분단 딛고 유럽경제 견인… 독일식 모델 주목해야”
입력 2013-12-10 01:35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독일 공부 열풍’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일식 복지국가 모델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복지국가’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 노르딕 국가들을 제쳐두고 독일에 관심을 둔 이유가 무엇일까. 오히려 독일 모델이 노르딕 국가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토대로 이른바 대륙식 보수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발전시켰지만,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본격화된 경제 불황으로 실업, 저출산 등 문제에 시달렸다. 1990년 통일 이후 동·서독 지역 간 격차, 통일 비용 등은 아예 ‘독일병’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던 독일 모델이 지금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경제력이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독일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히든 챔피언’을 원동력으로 유럽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바탕에는 기업활동과 직업교육 체계의 독특한 협력 구조가 있다.
기업 입맛에 맞는 아이들을 학교가 알아서 교육시켜 내보내라는 식으로 기업이 책임을 외면하고 학교를 취업전쟁터로 만드는 우리와 대조를 이룬다.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 건국 이후 일관성 있게 추진하고 있는 ‘사회적 시장경제’ 원리도 큰 역할을 해왔다. 경쟁에 기초한 시장경제적 성과를 극대화하되 그 성과를 사회보장을 통해 사회 구성원이 능력에 따라 분배받는 것이 사회적 시장경제 원리이다.
독일의 국내총생산 대비 법인세수 비율은 2010년 현재 1.5%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29위이다. 우리나라는 3.5%에 불과하다. 조세부담률은 우리나라가 19.3%, 독일은 22.9%로 모두 OECD 평균 26.7%보다 낮다. 그러나 조세부담률에 사회보장 부담 정도를 합한 ‘국민 부담률’은 독일의 경우 36.2%로 한국(26.5%)보다 훨씬 높다. 경쟁하되 경쟁의 열매를 승자가 독식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의 핵심인 것이다.
여기서 민간의 역할은 주목할 만하다. 국가는 재정을, 민간 비영리 부문은 서비스 제공을 담당하되 민간의 자율적 운영에 국가 간섭은 최소화하는 사회서비스 전달체계를 구축하였다. 카리타스와 디아코니로 상징되는 민간 비영리 복지기관은 경쟁에서 패배하거나 경쟁에 동등한 조건으로 참여할 수 없는 실업자, 산재 피해자,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여러 서비스를 자율적으로 제공하는 전통을 쌓아왔다.
사회복지관 직원단합대회마저 구청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에게 승인 받아야 하는 우리 실정과 매우 다르다.
독일 사회는 인구 고령화, 저출산, 유럽연합 확대에 따른 동유럽 이민자 대량 유입 현상 같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독일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난해 가을 총선 결과가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고 있는 듯하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연합/기독사회연합(CDU/CSU)과 자유민주당(FDP) 연립정권을 독일 국민은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장자유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자유민주당이 의회에서 사라진 대신 메르켈은 사회민주당(SPD)과 연정을 구성했다. 보수의 경쟁 이념을 받아들이되 자유민주당식 무한경쟁을 거부하고 사회민주당식 연대를 보완하라고 독일 유권자는 이번 선거를 통해 주문한 것이다.
결국 보수기독교 진영의 ‘자기책임·시장경제’ 원리와 진보 사민주의 진영의 ‘연대·사회적’ 원리, 즉 더욱 보완된 사회적 시장경제가 독일의 대응법이 될 것이다.
극우와 극좌의 대립 속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복지국가 모델 논의는 실종되어 가고 있다.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러는 사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하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
정재훈 교수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독일 트리어대 사회정책학 박사 △주요 저서 ‘독일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서비스’ ‘영화와 사회복지 그리고 연대’ ‘여성복지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