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배운다-전문가 기고] “獨 중소기업의 저력은 사람을 중시하는 문화”

입력 2013-12-10 01:36


독일 중소기업이 올해만큼 우리 언론의 조명을 많이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 경제의 난제들인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등의 햇빛 같은 답이 독일 중소기업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혁신, 효율성, 직업훈련, 연구·개발(R&D) 능력에 있어 독일 중소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럽연합 평균(12%)보다 훨씬 낮은 독일의 5%대 실업률의 배경에는 히든챔피언으로 불리는 독일 강소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자리 잡고 있다. 높은 인건비, 짧은 근무시간에도 불구하고 최고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독일 중소기업의 비결은 무엇일까.

대표적인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을 국내 중소기업인들과 함께 수차례 찾았다. 높은 혁신력은 거의 모든 회사의 공통점이었다. 레이저기기 제조사 트룸프는 직원의 14.5%, 매출의 9.1%를 R&D에 투입하고 있었다. 투자도 과감했다. 세계 액정크리스털 원료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머크는 액정원료를 개발한 지 100년이 넘었다. 100년의 투자가 LCD 시대를 맞아 드디어 결실을 거둔 것이다. 2009년 금융위기 때 구조조정 대신 초과인력을 R&D에 투입한 트룸프는 이듬해 60% 이상의 매출 증가를 이뤄냈다.

최고경영자(CEO)의 태도는 자유롭고 격이 없었다. 제품과 경영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글로벌마인드는 대기업 경영자 못지않았다. 인상적인 것은 중소기업이 독일 문화 배양의 중추라는 점이다. 근로자의 80%, 직업교육의 83%는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사내 직업교육은 마이스터들이 담당하고 있는데 마이스터 시험 필수과목에는 교육학이 포함된다. 기술을 가르치는 마이스터지만 직원 인성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차별이 크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미국, 프랑스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급여 차가 20∼30%에 달하지만 독일은 10% 내외다. 학교 졸업 후 굳이 대도시로 직장을 구해 갈 필요가 없다. 지역 곳곳에 분포된 중소기업은 젊은이들에게 훌륭한 일터이자 사회와 인간을 배워가는 문화 훈련장인 것이다. ‘확장된 가족’ ‘계몽된 가부장’은 독일 중소기업, CEO를 일컫는 별명이다. 그만큼 가족 같은 일터라는 뜻이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게르만을 일컬어 ‘거칠다. 소박하다. 용맹하다’고 표현했다. 세련되지도 않고, 지식이 많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던 독일인들의 성실, 정직성과 세계 최고의 혁신과 효율의 중소기업 DNA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로마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반박, 재판에 불려나온 루터는 “나는 내 말을 취소할 수 없다.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안전하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나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영국의 토마스 칼라일은 이를 근대 유럽사 최대 장면이라고 했다. 루터는 면죄부가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며 독일인들에게 철저한 천직의식을 심어줬다.

칸트는 “자기의 행동이 도덕적이라면 보편화될 수 있어야 한다”며 높은 도덕성을 강조했다. 루터가 열어놓은 정의와 천직의식과 칸트가 닦아 놓은 준법, 자유, 인권의 독일문화가 독일 중소기업의 DNA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헤르만 지몬 교수는 독일 히든챔피언의 경쟁력을 9가지로 제시했다. 시장지배, 혁신, 마케팅, 리더십 등이 그것이다. 이들 요소를 다시 2개로 줄이면 한우물 전략(제품개발), 글로벌 전략(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 중소기업의 저력을 다시 한마디로 줄인다면 “사람이 답”이라고 할 수 있다.

김평희 (코트라 글로벌연수원장)

△프랑크푸르트·뮌헨·함부르크 무역관장 △독일 자알란드대학 유럽경영대학원 수료 △주요 저서 ‘폴크스바겐을 타고 나는 날았다’ ‘한국인과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