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독일을 배운다] 남경필·원혜영 의원 특별대담 “권력 분산·타협의 정치 절실”
입력 2013-12-10 02:27
사회=오종석 정치부장
올 한 해 정치권에는 ‘독일 배우기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은 원내외 인사 60여명이 참여한 ‘대한민국국가모델연구모임’을, 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진보당 등 야당 의원 90여명을 한데 묶은 ‘혁신과 정의의 나라 포럼’을 주도해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일보는 창간 25주년을 맞아 연중 기획인 ‘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를 총정리하며 한국 정치의 나아갈 방향 등을 모색하기 위한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동 국민일보 사옥에서 오종석 정치부장 사회로 이뤄졌다.
-정치권에서 독일 모델 연구모임을 가진 배경은 무엇인가.
△원혜영(이하 원): 독일 모임은 기본적으로 시대 과제가 무엇이냐는 문제에서 시작됐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결핍된 요소가 무엇이냐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성장과 일자리, 남북통일의 문제로 귀결된다. 독일은 바로 이런 과제들을 먼저 실행하거나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여야 없이 좋은 모델이 됐다.
△남경필(이하 남): 2013년 현재 대한민국 국민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안’이다. 이런 삶의 불안을 최소화시켜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고, 그런 의미에서 독일 국가 모델을 연구해 국가 어젠다로 삼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독일 정치는 ‘협력과 타협’의 문화다. 현 한국 정치 상황과 비교해본다면.
△원: 독일은 최근 총선에서 기독교민주당이 압승했는데도 제1야당인 사회민주당과의 대연정을 구성할 정도로 타협의 문화가 정착돼 있다. 우리나라도 다수 집권세력이 힘으로 밀어붙이고 소수파 야당은 처음부터 다 반대하고 저지할 수밖에 없는 정치 구도를 깨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남: 독일 정치권에서 타협의 문화는 결국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라고 본다. 우리 선거는 52 대 48로 끝났는데, 권력은 100 대 0으로 가져가다 보니 선거에서의 승리가 모든 걸 좌우한다. 이 권력구조 하에서는 대화도 타협도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에 대해 무한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독일에 훌륭한 정치인이 많기도 하지만 득표한 만큼 권력을 나누기 때문에 협력이 가능한 것이다.
-정치권에서 독일식 개헌이나 정당명부제 도입 등의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는데.
△남: 지금 국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두 가지다. 외교·국방·치안 등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과 복잡한 사회의 갈등을 하나로 묶어내는 치유의 리더십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이 둘을 갖기에는 이미 우리 국가 규모가 커졌다. 2013년의 시대정신은 권력분산이다. 독일식 내각제로 갈지, 미국식 대통령제로 갈지 논의가 더 필요하다. 사견을 전제로 미국식 모델보다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모델이 더 시대에 맞는다고 본다. 이제 국가 시스템 개혁을 위한 특위를 설치해야 한다.
△원: 우리나라 역대 개헌은 더 좋은 국가 체제 발전보다는 권력 강화와 연장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크고, 이제 국민들과 어떻게 공유하느냐는 과제만 남았다. 먼저 책임정부제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정치는 사회 자본을 축적·강화하는 기제가 아닌 삭감·위축 기능을 해왔다. 이유는 단임제 대통령제다. 다원화되는 우리 사회도 다양한 정치세력이 자기 색을 가지고 다당제로 가는 게 필요하다. 승자독식 구도의 보완 장치로 연대 등 결선투표제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다양한 국민 계층을 위해서 비례대표제도 대폭 확대돼야 한다.
-독일은 지방자치가 잘 돼 있는 국가로 평가받는다. 한국의 지방자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은.
△원: 이제 우리 사회의 자치와 분권은 사회적 민주화 차원에서의 지역 배려를 넘어 중앙 권력구조 변화에서 시작돼야 한다. 중앙 통제식은 이미 한계가 왔다. 지난 6월 방문한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도 경제정책은 주정부가 책임지고 있더라. 주끼리 경제적 격차가 5% 이상으로 벌어지면 잘사는 곳이 못사는 곳을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남: 우리나라 정부와 지방의 관계는 아버지와 미성년자인 아들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거의 정부가 모든 걸 결정한다. 지금 시험적으로 제주도가 자치권을 부여받았는데, 그래도 아버지와 장성한 아들 관계 정도다. 부부관계 정도로 발전해야 제대로 된 지방자치가 가능하다.
-독일은 통일 전 서독과 동독 사이에 경제 교류 등 준비를 천천히 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남북관계는 얼어붙어 있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남: 통일 정책은 집권세력 교체와 상관없이 하나의 큰 사회적, 정치적 합의를 이뤄내 일관성 있게 진행돼야 한다. 남북 교류와 통일을 위한 준비는 보수세력의 동의 없인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세력의 가장 안정적인 지지를 받는 박 대통령이야말로 논의를 주도적으로 끌고나갈 수 있다. 특히 새로운 정부와 국회가 통일 헌법을 준비해야 한다.
△원: 남북 관계를 획기적이고 강력하게 풀 수 있는 힘과 권위를 가진 사람이 박 대통령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기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햇볕·포용정책을 퍼주기라고 비난해서는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 한계가 있었다면 극복하는 방안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남: 최근 독일을 방문해보니 과거 통일 협상을 했던 은퇴한 관료들이 놀랍게도 똑같은 말을 하더라. 새누리당 의원들에게는 ‘주는 걸 아까워하지 마라. 모든 게 투자다’라고 하고, 야당 의원에게는 ‘주되, 그냥 무조건 줘서는 안 된다. 무언가를 제공할 때는 거기에 걸맞게 바꿀 수 있는 제안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들은 과거에 지원하면서 ‘철조망을 5m 뒤로 물려라’ 등의 작은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하더라.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다.
-경제민주화와 경제 활성화란 두 가지 이슈는 상생할 수도 있다, 혹은 상충한다는 분석으로 나뉜다. 독일 경제 모델을 적용하면 어떤가.
△원: 독일의 노사 공동결정제는 노동자의 힘이 자본에 굴복해 타협한 게 아니라고 한다. 주인이 하나인 재벌 체제도 강점이 있지만 기업 구성원 전부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것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어떤 처지든지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수주작처(隨主作處)란 말이 있다. 우리는 노사를 갈등 구도로만 보고 어떻게든 제압하려고 하는데, 그렇게는 어렵겠다. 경제민주화도 사회적 기반을 강화하는 기능이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멀리 가려면 다 같이 가야 한다.
△남: 지금은 경제민주화와 경제 활성화가 대립되는 듯한 어젠다로 프레임을 짜놨는데 그것도 안 된다. 예컨대 박근혜정부가 70% 고용률 목표로 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고용률 변동 중 제조업에서 10만개의 일자리가 늘었다. 크게 늘어난 분야는 자동차 부품 일자리더라. 결국은 경제민주화로 인해 협력업체와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없앤 결과로 중소기업의 외국 수출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경제민주화가 갖는 경제 활성화의 역할이다.
-국민일보의 ‘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시리즈가 1년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평가해 달라.
△남: 국민일보가 독일을 모델로 우리 사회 정치·경제·사회 측면의 여러 문제점과 행태를 비판하는 등 진지한 논의를 이끌어왔다. 경의를 표한다.
△원: 긴 호흡으로 아주 수준 높은 기획을 마무리한 저력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에서 퓰리처상이 있다면 단연 이 시리즈가 차지했어야 할 정도였다.
정리=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