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선진국 지혜를 배운다] 1970년대 ‘高세금-高복지’ 확립… 스웨덴 복지, 고치고 또 고친 유연함

입력 2013-12-10 01:35


복지는 갈등 유발자인가, 해소자인가.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좌우 세력이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라는 이름으로 공론의 장에서 벌인 논쟁만 보자면 복지는 좌우 대립이 극심한 한국 사회에 추가된 뇌관일 따름이다.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무상보육에 이어 올해 내내 정치권을 달군 기초연금 논쟁은 한국 사회에서 복지가 어떻게 사회갈등을 촉발하고 격화시키는지 잘 보여준다.

정치학자 해롤드 라스웰은 정치를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얻는지 결정하는 사회적 과정’으로 정의했다(‘침팬지 폴리틱스’). 복지란 한정된 재원을 개별 사회집단 사이에 배분하는 방식과 관련된다. 누가 무엇을 얼마나 갖는지가 핵심이라는 점에서 복지야말로 라스웰이 말한 정치에 부합한다.

하지만 복지의 정치적 속성이 늘 갈등으로 비화되는 건 아니다. 성공적으로 복지국가를 만들어낸 유럽 선진국에서는 복지가 계층간 긴장감을 해소하고 집단간 갈등을 비등점 아래로 낮추는 치유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복지를 사회 통합의 촉매로 활용한 지혜는 복지국가의 길을 먼저 걸어간 독일과 스웨덴에서 찾을 수 있다.

스웨덴은 국부(國富)가 소수 대기업에 집중된 국가이지만 세계에서 복지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나라이기도 하다. 몇몇 대기업 매출이 국내총생산(GDP)의 65%를 차지할 만큼 부가 집중돼 있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이 27%(2007년 기준)를 넘을 만큼 사회적 재분배 역시 철저히 이뤄진다.

언뜻 모순으로 보이는 스웨덴식 접근법은 1세기 가까운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자 대외 환경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해온 유연함의 소산이었다. 스웨덴은 이미 1960∼70년대 공격적으로 복지를 확대해 왔다. 9년 의무교육제(1966년), 아동가정 주택보조비(1968년), 주 40시간 근무(1971년), 출산 유급휴가제(1972년), 부모보험제(1974년) 등 일련의 복지정책이 이 무렵 도입됐다.

자연스럽게 세금도 뛰었다. 스웨덴 세금부담률은 1940년대 15% 수준에서 1960년 28.7%를 거쳐 1970년 40.1%까지 치솟았다. ‘고세금-고복지’의 스웨덴식 모델은 이 즈음 확립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2000년 52%로 뛴 세금부담률은 2009년에도 47%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980∼90년대에도 복지가 꾸준히 확대되긴 했지만 중대한 변화도 시작됐다. 시장과 성장, 경쟁 같은 복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들이 도입된 것이다. 우체국·통신이 민영화되고 의료경쟁제가 도입됐으며 연금제도에 대한 대대적 수술이 이뤄졌다. 2000년대 이후에는 약국 민영화 등 보건의료 분야에서 경쟁의 도입이 가속화됐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은 주한 스웨덴 대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이렇게 전한다. “스웨덴 국민들 사이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복지 학습효과를 통해 복지제도의 필요성이 뼛속 깊이 녹아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연금운영을 책임지는 정부가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하니 받아들이기 싫어도 개혁 필요성이 있겠지 하면서 국민들이 받아들인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잦은 정권교체도 복지와 관련된 정쟁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언젠가 정권을 잡을 세력들은 특정 복지정책에 대해 대책 없이 반대하거나 지나치게 과도한 혜택을 약속하는 일을 피했다. 정치권이 복지에 관한 한 선을 지켰다는 뜻이다.

덕분에 스웨덴은 정치권의 합의 하에 복지제도가 끊임없이 수술에 재수술을 거듭하며 현실에 적응해왔다. 국내외의 새로운 환경에 따라 기존 제도를 고쳐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되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 형태로 유지시켜온 것이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스웨덴의 복지개혁이 선별 혹은 보편복지를 다투고 있는 한국 사회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는 점이다. 스웨덴은 현재 한국과 비슷한 수준인 1인당 국민총생산(GNP) 2만 달러였던 1987년 이미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이 30%에 육박했다. 1인당 GNP가 2만4000달러를 넘어선 현재 우리나라는 이 비율이 10%에 못 미친다. 한국에서 스웨덴 복지 축소를 말하며 복지 확대에 반대하는 것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말마따나 “비만 환자가 다이어트한다고 하니 영양실조 환자도 따라하는 격”이 될 수 있다.

여러 차례 재조정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 폭넓은 복지 안전망을 구축한 나라다. 특히 여성 및 아동에 대한 지원이 광범위하다. 출산휴가는 부모 각각 240일(8개월), 둘째 아이를 낳으면 180일을 추가해 420일(14개월)까지 쉴 수 있다. 이와 별도로 390일(13개월)의 유급양육휴가까지 보장받는다. 아동에게는 만16세가 될 때까지 아동수당을 준다. 또 12세 이하 자녀가 병에 걸려 학교나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면 월급의 80%까지 부모수당을 신청할 수 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