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선진국 지혜를 배운다] 말 많은 복지, 독일선 사회 통합의 촉매 역할

입력 2013-12-10 01:35


복지는 갈등 유발자인가, 해소자인가.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좌우 세력이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라는 이름으로 공론의 장에서 벌인 논쟁만 보자면 복지는 좌우 대립이 극심한 한국 사회에 추가된 뇌관일 따름이다.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무상보육에 이어 올해 내내 정치권을 달군 기초연금 논쟁은 한국 사회에서 복지가 어떻게 사회갈등을 촉발하고 격화시키는지 잘 보여준다.

정치학자 해롤드 라스웰은 정치를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얻는지 결정하는 사회적 과정’으로 정의했다(‘침팬지 폴리틱스’). 복지란 한정된 재원을 개별 사회집단 사이에 배분하는 방식과 관련된다. 누가 무엇을 얼마나 갖는지가 핵심이라는 점에서 복지야말로 라스웰이 말한 정치에 부합한다.

하지만 복지의 정치적 속성이 늘 갈등으로 비화되는 건 아니다. 성공적으로 복지국가를 만들어낸 유럽 선진국에서는 복지가 계층간 긴장감을 해소하고 집단간 갈등을 비등점 아래로 낮추는 치유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복지를 사회 통합의 촉매로 활용한 지혜는 복지국가의 길을 먼저 걸어간 독일과 스웨덴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복지가 갈등의 핵으로 부상한 한국과 달리 통독 직후 독일에서는 서독과 동독 주민들 사이에 번지던 대립과 불만을 완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문가들은 ‘동독 출신 앙겔라 메르켈 총리’로 상징되는 동·서독 화학적 결합의 바탕에 공격적인 복지 확대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금과 의료보험, 공공부조, 고용보험제도 같은 것들이다.

1990∼1996년 동·서독 표준소득자의 연금액수를 비교한 수치(그래픽)를 보면 동·서독 연금 통합의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확인된다. 통합 직후인 1990년 7월 1일 서독의 표준소득자 연금액은 월 852유로인 반면 동독은 344유로에 불과했다. 동독 연금생활자는 서독의 40% 정도를 받았다는 뜻이다. 두 지역의 소득과 물가 등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차이였지만 통독 후 이런 격차는 분쟁의 불씨였다. 독일 정부는 동독 지역의 급여 수준을 꾸준히, 확실하게 높였다. 1996년에는 서독인(993유로)과 동독인(817유로) 연금액 격차가 200유로 내로 줄어들었다. 6년 만에 동독의 연금이 서독의 80%까지 쫓아온 것이다. 이런 연금제도의 신속한 통합은 2류 시민이라는 동독인의 불만을 상당 부분 잠재웠다(이정우 인제대 교수의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복지국가의 역할’).

의료보험의 경우에도 서독의 공공의료보험조합(질병금고)들이 동독에 도입되면서 동독 주민의 90% 이상(1994년 기준)이 의료보험제도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외에도 정부는 동독 지역을 대상으로 사회적 일자리 사업인 고용창출사업(ABM)과 직업교육 장려, 조기퇴직급여 등 적극적인 노동정책을 폈다. 이런 통일 과도기 정책들은 200만명 정도의 실업 예방 효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정우 인제대 교수는 “여성의 경우 1990년대 후반 동독 연금이 서독보다 높아져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을 만큼 통일 후 동·서독 연금 통합이 신속하게 이뤄졌다. 통일 당시 동독 지역에 투여된 지원액의 절반 내외가 복지 관련 비용이었다”며 “사회적 합의를 거쳐 과감하게 단행된 복지통합 덕에 통독 사회는 막대한 사회적 갈등 비용 없이 안정적으로 통합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여대 정재훈 교수도 “통일 직후 미국 캐나다보다 낮던 독일 사회의 사회통합지수는 급격히 높아졌고 그 첫 번째 원인을 꼽으라면 복지였다”며 “통일 후 동독에 이식된 서독의 복지제도가 동·서독 간 순조로운 사회 통합의 일등공신”이라고 말했다. 실제 1993년 동독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주민의 87%가 통일 이후 생활에 ‘매우 만족’ ‘최고로 만족’ 등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통일 3년 만에 이룬 놀라운 결과였다.

글·사진=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