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비주류 인생] 청각장애인 선수를 프로무대로! 마이너에 ‘희망 야구’ 가르친다
입력 2013-12-10 01:35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의 무한도전
언제부턴가 프로야구에서는 김성근 감독이 롤모델이 됐다. 각 구단의 감독들이 너도나도 김성근표 ‘이기는 야구’를 펼치겠다고 벼른다. 두산의 새 사령탑이 된 송일수 감독의 일성도 “한국에서는 김성근 감독이 롤모델이다. 나도 이기는 야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김 감독이 프로에 있을 때 혹자는 ‘재미없는 야구’라고 폄하를 했지만 날이 갈수록 김성근 왕국이 얼마나 탄탄했는지, 그가 조련한 SK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얼마나 탄력적으로 날아다녔는지 그의 야구를 높이 평가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김 감독은 지금 다른 지점에 있다.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에서 패배자를 승리자로 만드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어느 구단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선수들, 프로 구단에서 실패한 선수들을 가능한 재목으로 만들어 프로로 진출시키는 것은 몸과 재능이 우선인 스포츠에서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이었다. 야구라면 생명까지도 바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평생을 살아온 김 감독이기에 그런 선택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런데 첫해인 지난해 5명을 프로구단에 보냈고 올해 12명을 보내면서 ‘패자도 다시 설 수 있다’는 시대의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내고 있다.
그는 요즘 더 힘들고 아름다운 희망에 도전하고 있다. 장애인 선수를 프로야구 무대로 보내겠다는 엄청난 희망이다. 박병우 선수. 올해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이 스물의 해맑은 젊은이다. 키 1m75, 몸무게 70㎏ 안팎의 스펙으로는 요즘 투수의 조건에 들기 어렵다. 더구나 그는 귀에 보청기를 끼고 훈련을 한다. 청각장애인 선수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고 판단을 한다. 시력도 좋지 않다. 인터뷰를 할 때는 소통이 어려워 필담을 해야 한다. 이런 조건의 선수가 프로야구단에 갈 수 있을까.
김 감독은 지난주 말했다. “고양원더스라는 팀 자체가 희망을 주는 팀이다. 나는 병우에게서 희망을 본다. 1%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도전해야 한다.”
“예쁘고 가능성 있는 폼”
김 감독이 병우에게서 희망을 보는 것은 그의 투구폼 때문이다. 그의 간결한 투구폼을 김 감독은 ‘예쁘고 가능성 있는 폼’이라고 칭찬한다. 병우는 지난해 제물포고 3학년이었다. 고교 야구감독이 원포인트 지도를 받으라고 병우를 김 감독에게 데리고 왔다. 투구에 대해 몇 가지 가르쳐 줬는데 올해 다시 보니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래서 정식 테스트를 거쳐 고양원더스에 입단시켰다.
“병우는 직구 구속이 135㎞까지 나왔다. 기술적인 부분을 다듬으면 구속을 높이고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살릴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보통 선수라면 키가 작아서 잡지 않았겠지만 우리 팀 자체가 희망에 도전하는 팀이라 기회를 주기 위하여 내가 입단을 제의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병우의 밸런스 있는 모양새가 우리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요소가 있다고 봤다.”
김 감독은 정을 드러내지 않는 감독이다. 선수를 훈련시킬 때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무정하게 대한다. 그렇게 훈련을 시키고는 밤에 마음이 아파 혼자 끙끙 앓는다. 병우도 올해 처음 입단했을 때 훈련량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부상을 입기 일쑤였다. 선수로서의 몸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단계였다. 그러나 갸륵한 구석이 있었다. 야간훈련은 부과하지 않았는데도 혼자 오후 9∼10시 운동장에 남아 개인연습을 했다.
선수들이 김 감독의 지옥훈련을 버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올 5월 말쯤이었다. 고양원더스 선수 중 5명이 프로야구단으로 선발돼 갔다. 프로야구 2군 팀인 퓨쳐스리그와 한참 정규게임을 펼치는 중에 에이스 5명이 빠지니 나머지 선수들이 시합할 엄두를 못 내고 주저앉을 지경이었다. 마침 그때 비가 내렸다. 김 감독은 빗속에서 선수들과 함께 뒹굴며 팀을 리빌딩했다.
“선수들이 일부 빠졌다고 시합을 못한다면 너희들이라는 존재는 대체 뭐냐? 너희들도 선수가 아니냐?” 김 감독은 강하게 밀어붙였다. 비는 4일간이나 계속됐다. 김 감독은 4일 내내 비를 맞으며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뒹굴었다. 70을 넘긴 노감독이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다 맞으며 운동장에서 뒹구니까 코치들이 겁을 내며 만류하다가, 감독이 물러서지 않으니까 앉아서 하라고 플라스틱 의자를 운동장으로 가져왔다. 김 감독은 단호했다. “지금은 팀을 리빌딩하는 중이다. 내가 의자에 앉아서 훈련을 시킨다면 나는 낙오하는 것이다. 감독이 낙오하는 팀이 리빌딩이 가능하겠는가?”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빗속에서 뜨거운 것을 삼키는 것 외에는.
그렇게 4일간 팀을 다시 만든 다음 첫 경기에서 경찰청 팀과 붙어 11대 9로 이겼다. 에이스 5명이 빠져나간 나머지 선수들이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한 경기였다. 그 후 고양원더스는 22승 5패를 기록했다. 전설의 기록이라고 할 만한 성적이다. 그 이후 7명이 더 프로구단으로 진출했다.
선수들이 김 감독을 따라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가 감독의 헌신이다. LG 이진영 선수에 따르면 김 감독의 펑고배팅은 예술이다. 처음에는 수비가 가능한 범위 내로 공을 쳐주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양 사이드의 범위를 넓혀가며 혹독한 수비훈련을 시킨다. 몇 시간 펑고를 받으면 선수들이 견딜 수 없어 엉엉 울면서 공을 잡는다.
공격훈련 시간에는 직접 공을 토스해준다. 공을 하나하나 쳐나가면서 선수들은 독기를 품게 된다. 감독이 몇 시간을 쪼그려 앉아서 공을 올려주는데 가슴이 뭉클하지 않을 선수가 없다. 그렇게 배팅을 하고 나면 선수들은 손이 곱아 손가락을 펴지 못한다. 그때 김 감독은 선수들의 손을 품안에 넣고 마사지를 해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준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은 선수가 없다. 그 고집스런 승리에 대한 욕구는 감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기립 박수 받는 날 올 것
박병우는 태어나서 첫 생일을 맞기 전에 사고를 당했다. 10개월쯤 됐을 때 쇠 젓가락으로 전기 콘센트를 건드렸다.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았는데 이상이 없다고 하더니 다섯 살이 됐을 때 청력에 이상이 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삼성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 때 이승엽 선수가 3점 홈런을 치는 것을 보고 저도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박병우가 써주는 글씨는 맞춤법이 정확하고 또박또박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체전에 나갔습니다. 저는 불펜으로 뛰었습니다. 결과는 은메달입니다.” 김 감독이 무섭지 않나요? “약간 무섭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지도해주시니 제 기량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김 감독은 여러 장애를 갖고 있지만 선수들과 잘 지내고 적응도 잘하는 병우를 특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다 보니 부상이 많았지만 지금은 근력이 많이 좋아져 실력이 쑥쑥 올라오고 있다. 김 감독은 남다른 제자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의 잠재능력은 거의 무한대다.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평생에서 잠재능력이 솟구치는 때가 있는데, 그 능력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선수는 훈련에서 그것을 만들어둬야 한다. 누구라도 젊었을 때 그것을 갈고닦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병우에게 프로의 벽은 높고 멀다. 프로야구단은 전국에서 날고 기는 선수들이 모인 곳이다. 병우가 훗날 프로야구 마운드에 올라가 절묘한 컨트롤을 갖춘 선수가 돼 150㎞에 육박하는 공을 뿌릴 때 관중은 기립 박수를 보낼 것이다. 야구로 평생의 희망을 키워가는 명감독이 키우는 젊은이기에 우리는 그런 날이 올 것을 믿는다.
고양=임순만 기자 s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