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의 한국 젊은이들] “세계를 바꾸고 싶나요… 비전 품고 도전하세요”

입력 2013-12-10 01:39


유엔 여성기구 근무 고윤화씨

유엔으로 대표되는 국제기구 진출. 국제 이슈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이라면 한번쯤 꿈꿔 봤을 만한 직업이다. 젊은이들은 국제사회를 무대로 세계 각국 동료들과 함께 마음껏 자신의 능력과 꿈을 펼칠 수 있는 짜릿한 상상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그 상상과 현실은 어떨까. 국제기구 현장에서 맨몸으로 부딪히며 체험한 영 파워(Young Power)를 만나보고, 국제기구 진출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국제기구를 한 개인의 꿈을 이루기 위한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유엔 등 국제기구를 목표로 삼고 있는데, 이곳도 역시 세상의 많은 일터 중 한 곳에 불과하다는 것을 유념하고 자신이 펼치고 싶은 비전과 꿈이 무엇인지 먼저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유엔 여성기구(UN Women)에 근무하고 있는 고윤화(29·여·사진)씨의 조언이다. 유엔 여성기구는 국제적인 양성 평등 실현과 여성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고씨는 9일 국민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국제기구에서 일한다는 것보다 자신의 꿈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씨는 국제기구초급전문가(JPO) 과정을 거쳐 2012년 2월 국제기구에 입성했다. 그는 대학원 재학 중 JPO에 대해 알게 됐다. 고씨는 여성인권에 주목했다. 양성 평등의 구현에 대한 논리를 세우고 한국 여성인권의 현실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자신만의 준비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씨는 유엔 여성기구 내 경영행정국(DMA)의 법무지원 업무를 맡고 있다. 유엔 여성기구가 체결하는 계약 및 양해각서에 대한 법률적 검토와 협상을 담당한다. 고씨는 “유엔 여성기구 서명이 들어가는 모든 보고서와 서류가 집행이사회 및 유엔총회 운영지침에 맞는지 검토한다”고 말했다. 업무는 이 뿐만이 아니다. 고씨는 여성기구 내 직원 간 분쟁 및 직권남용 행위도 조사한다. 때론 몸이 2∼3개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지만 큰 보람을 느낀다. 그는 “유엔 여성기구의 경영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현재 고씨는 직접 현장에 서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장에서 뛰는 이들을 뒷받침하는 자신의 일도 빛이 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필드(현장)에서 직접 여성들을 만나거나 가시적 성과를 바로 낼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유엔 여성기구의 장기적 비전에는 큰 보탬이 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그렇다면 고씨가 일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고씨는 덴마크의 유엔 여성기구 사무소 유치 체결협약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덴마크 정부와 여러 이슈를 놓고 한창 협상이 진행 중일 때 다른 부서에서 놓친 쟁점을 찾아내 협약에 반영한 것이다.

고씨는 특히 여성폭력 근절·예방에 대한 유엔 여성기구 여성지위원회(CSW) 합의문이 채택됐을 때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당시 합의문에 여성살해(femicide) 방지 관련 문구를 담기 위해 다른 나라의 집요한 반대에도 협상에 임했던 멕시코 대표단이 나중에 눈물을 흘리던 때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일터로서의 국제기구는 과연 어떨까, 외부에서 바라보던 모습과 달라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을까. 고씨는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역동적인 생활은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데, 나는 뉴욕 유엔본부에서 업무를 시작해서 사업들을 서류로 볼 뿐 현장을 체험할 기회는 없었다”며 “이 때문에 한때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고, ‘국제공무원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고 고씨는 설명했다. 그는 별도의 분야에도 시간을 쪼개 다양한 사업보고서를 검토하는 등 자신만의 준비를 다시 시작한다고 했다.

고씨가 이제 목표로 하는 것은 현장 체험이다. 현장 체험 없이 본부에서 일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현장과 본부 사이의 업무 갭(gap)을 줄이는 노력을 하고 싶다. 조직 전체의 효율성을 높여서 더 많은 자원이 실제 양성 평등을 실현하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