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 GOP 철책 근무 믿음의 기독 병사들… “나라 지켜주세요” 이들의 기도가 평화 밑거름

입력 2013-12-09 18:50 수정 2013-12-10 14:30


초겨울 눈으로 산과 들은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60년간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곳, 평화로운 자연과 군사적인 긴장감이 공존하는 곳, 비무장지대(DMZ)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 사람들의 발길을 거부한 채 환갑을 맞은 DMZ를 지난 3일 오후 찾았다.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DMZ 남쪽에 위치한 백두산교회에서 출발한 차량은 휴전선 철책으로 향했다. 40분 정도 달려 민간인출입통제선에 도착하자 검문소를 지키던 병사가 큰 소리로 경례를 올려붙였다. 당부사항이 들려왔다.

“이 지역은 미확인 지뢰지대로 6·25전쟁 당시 설치된 수많은 지뢰가 그대로 매설돼 있습니다. 매일 실탄을 휴대하고 사격훈련 및 군사작전이 이뤄지는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취재하실 때도 안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민통선을 지나 차로 40∼50분 들어가자 아담한 조립식 건물이 나타났다. 최전방 비무장지대 앞에 위치한 21사단 GOP 초소였다. 초소건물 앞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한반도 침략의 원흉을 쓰러뜨린 안 의사처럼 눈앞의 적을 한방에 물리치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다고 한다.

시선을 북쪽으로 돌리자 안개 너머로 북한군 초소가 들어왔다. 이날 오후 북한의 실질적 2인자이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갑작스레 실각했다는 긴급 뉴스가 타전됐는데도 북한군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를 따라 형성된 GOP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장병들의 눈초리는 매서웠다.

장병들은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즉각 대응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장병들을 통솔하는 간부들은 무전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경계근무 중인 장병들의 손에는 K-1과 K-2 소총이 들려 있었다.

GOP에 들어가 보니 전투상황에 대비한 각종 중화기와 무전시설, CCTV 등 군사시설이 시야에 들어왔다. 장병들은 이날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깎아지른 듯 가파른 산과 언덕을 오르내리며 철책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양구 지역은 6·25전쟁 최대 격전지 중 하나다. 이 근방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긴장감이 팽팽했다. 1990년 제4땅굴이 발견된 데다 지뢰사고도 가끔 발생하고 무장공비가 출몰한 적도 있다.

군종참모 서광석 대위는 이 땅에 평화를 허락해 달라고 기도했다. 장병들도 같은 민족이 총부리를 겨누고 맞서야 하는 분단의 현실을 아파하며 평화를 위해 뜨겁게 기도했다. 서 대위는 기도가 끝난 뒤 준비해 간 초코파이와 따뜻한 차를 나누며 장병들을 격려했다.

장병들 숙소인 생활관에 들어서자 크리스마스트리에 감사 메모가 눈에 띄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장난을 받아주는 후임 병사가 고맙다는 한 선임병의 감사 메모는 초겨울 햇살처럼 따뜻했다. 제설작업을 무사히 마쳐서, 휴지가 보급돼서, TV에서 미인들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소소한 일상에 감사를 표하는 메모도 많았다. 아들 걱정하시는 부모님께 감사하고 건강을 위해 늘 기도한다는 효자 장병도 있었다.

이날 경계근무를 선 노수찬(20·서울 성락성결교회) 일병은 “힘들지만 나라를 지킨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한다”며 “전역하는 날까지 가족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경계근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게 웃었다. 의무병 이정진(21·서울 왕도교회) 상병은 “제대할 때까지 몸 건강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며 “동료 병사들이 감기를 앓거나 다리를 삐거나 하면 내 마음이 더 아파지는 것을 보니 전우애가 듬뿍 쌓인 것 같다”고 말했다.

GOP 주변은 6·25전쟁 때 수십 차례 주인이 바뀐 격전지였지만 강산이 여섯 번 바뀌는 사이 포연 자욱했던 전투의 흔적은 희미해졌다. 움푹 파인 곳에 포진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 아무런 표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차가운 겨울 공기 속을 감도는 긴장감은 변함이 없다. 돌아오는 내내 “이 나라를 지켜주시고 건강하게 군생활을 마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장병들의 기도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양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