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그 아름다운 이름] 꿈 이뤄주는 착한 투자… 크라우드 펀딩이 후원해요
입력 2013-12-10 01:31
기가 막힌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당장이라도 실행에 옮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문제는 돈이다. 수중에 돈이 없으니 거액이 들어가는 일을 시작할 방법이 없다. 무작정 돈을 마련하려 뛰어다니자니 막막하기만 하다.
이런 이들에게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이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크라우드 펀딩은 인터넷 공간에서 다수의 개인들에게 자금을 조금씩 모으는 공유경제 행위를 말한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인터넷에 올리고 이를 본 다른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목표한 사업을 시작하면 된다.
함께 이루는 꿈
아시아 최대 이종격투기 대회 로드FC의 밴텀급 챔피언인 이길우(30)씨는 격투기 선수로서 치명적 질병을 앓고 있다. 이씨는 선천적으로 후두에 종양이 있는 ‘후두유두종’ 때문에 어릴 적부터 두 달에 한 번꼴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지금까지 받은 수술만 무려 25차례에 달했다.
가진 것 없는 이씨에게 격투기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보통 사람들과 달리 호흡이 짧아 격투기 선수로서는 치명적이었지만 피나는 연습으로 이를 극복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그는 지난 6월 강원도 원주에서 열린 ‘로드FC 12’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생애 첫 챔피언 타이틀을 따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그가 경기당 받는 파이트머니로는 방어전을 치르기가 여의치 않았다. 정기 검진을 받아 면역력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더더욱 돈이 부족했다. ]
그때 그의 동료 신장훈씨가 떠올린 게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마땅한 스폰서가 없는 이씨의 사연을 인터넷에 올려 ‘국민 스폰서’를 붙여주기 위함이었다. 500만원을 목표로 모금을 시작했고 네티즌들은 단 두 달 만에 목표금액을 모두 채웠다.
6월 13일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화선 할머니를 위한 펀딩도 진행됐다. 김 할머니의 사연을 들은 대학생들이 네티즌들과 함께 돈을 모아 ‘김화선 인권센터’ 건립에 보태자고 제안한 것이다.
김 할머니는 1941년 15세에 일본군에 끌려가 싱가포르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광복 직후 부산으로 돌아온 김 할머니는 늘 남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식당과 농사일로 모은 돈으로 대학생 20여명의 학비를 댔고, 2009년에는 캄보디아 우물 사업에 7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눈을 감을 땐 6000만원을 나눔의 집에 모두 기부했다.
나눔의 집은 할머니의 뜻을 받아 경기도 광주시 원당리에 인권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 건립에는 약 5억원이 필요해 부족한 돈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채우고 있다. 대학생들이 진행한 1차 펀딩에는 지난 8월 14일부터 지난달 20일까지 3089만3000원이 모였다. 2148명이 적게는 5000원에서 많게는 50만원까지 모은 돈이었다.
최근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헌정영화 ‘수요일’(가제)도 펀딩으로 진행되고 있다. 영화사 가우자리 관계자는 지난 6일 “위안부 할머니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며 “단순히 영화 한 번 보여주는 것으로 보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한 사람이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부에서 공유로, 공유에서 산업으로
크라우드 펀딩은 인터넷상에서 공유경제의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국내 최대 크라우드 펀딩 기업인 유캔펀딩은 지난해 12월 이후 지난 3분기까지 월평균 62개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모금액 달성률은 평균 148%에 달하고 회원 증가율은 무려 722%에 이른다. 단일 프로젝트 최고 모금액은 청소년 재능기부 사이트인 ‘굿웨이위드어스’와 함께 네팔희망학교를 건립할 때 모은 2억173만원이다.
크라우드 펀딩이 기존 모금과 가장 다른 점은 보상이다. 단순 기부가 아니라 투자개념이기 때문에 투자금액에 따라 보상이 뒤따른다. 네팔희망학교 건립의 경우 5000원 후원에는 감사메시지, 2만원 이상 후원에는 후원자의 이름을 동판에 기재했다. 정부도 크라우드 펀딩 지원에 나서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기업을 운영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난 9월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다. 서태종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창업기업가 등이 유망한 사업 계획이나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이를 사업화할 자금이 없어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며 제도 도입 배경을 밝혔다.
금융위는 신생 기업이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본을 조달할 경우 공시 의무를 대폭 완화시켰다. 또 이 방식으로 연간 7억원 이하를 모집하는 기업에는 증권신고서 제출을 면제한다는 방침이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