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이호룡 ‘신채호 다시 읽기’
입력 2013-12-09 01:27
단재 신채호(1880∼1936)는 봉건 유학자에서 자강운동가로, 자강운동가에서 민족주의자로, 다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사상적 변신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채호가 민족주의자로 각인되고 있는 건 1960∼70년대의 시대상황과 관련이 있다는 게 한국 아나키즘 연구에 천착해온 저자의 시각이다.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일본 관동군 장교였던 자신의 이력을 가려줄 도구로 민족주의를 내걸었고, 박정희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민주화 운동세력들도 민족주의를 앞세우면서 박정희 정권의 반민족성을 비판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강권에 반대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실천에 옮긴 저항적 지식인의 표상인 신채호가 대표적 민족주의자로 부각된 것이다.”(‘책을 내면서’에서)
국내 학계에서 신채호의 아나키즘에 대한 연구는 몇 가지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첫째, ‘신채호는 어느 수준까지 아나키즘을 수용했는가’이다. 최근의 연구조차 신채호가 아나키즘적 방법론을 채택한 것에 불과할 뿐, 아나키스트는 아니라는 게 대세이다. 그러나 저자는 신채호가 ‘조선혁명선언’을 통해 민중직접혁명론을 제창한 아나키즘 수용으로 선구자라고 지적한다.
둘째, ‘신채호는 언제부터 아나키즘을 수용했는가’이다. 지금까지 신채호의 아나키즘 수용 시기는 ‘낭객의 신만년필’이 발표된 1925년 이후라는 게 정설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신채호의 아나키즘 수용 시기를 3·1운동 이후로 좀 더 앞당겨 보고 있다. 1905년 무렵 황성신문사에 근무할 때 고토쿠 슈스이의 ‘장광설’을 읽고 아나키즘에 공명한 바 있는 신채호는 3·1운동을 계기로 아나키즘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셋째,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혁명선언’에 관한 내용 분석이다. ‘조선혁명선언’에서 신채호는 민중직접혁명론은 민족주의에 아나키즘을 접합시킨 것으로 민중적 민족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에 대해 저자는 ‘조선혁명선언’이 제시한 민중직접혁명론이야말로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의 민족해방운동론의 결정판이라고 보고 있다. 다분히 논쟁적인 주제이지만 신채호를 한국적 아나키즘을 확립한 인물로 재평가할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