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간사옥 매입 김창일 회장] “한국 현대건축의 걸작 사유물이라 생각 안해”
입력 2013-12-09 01:43
김창일(62) 아라리오갤러리 회장이 한국 현대건축물의 걸작으로 꼽히는 서울 원서동 공간(空間)사옥의 새 주인이 됐다. 지난달 25일 공간 측 이상림 대표와 김 회장이 15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공간사옥을 품고 있던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가 경영난에 빠지면서 공개경매에 부쳤으나 유찰된 지 나흘 만에 새 주인이 나타나 건축계와 미술계의 핫이슈가 됐다.
충남 천안과 서울 청담동에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김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전화에서는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 흘러 나왔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얼마 전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이 노래를 직접 불러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공간사옥을 왜 매입했느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변이 돌아왔다. “제가 평소 미술관을 갖는 게 꿈이었어요. 하지만 공간사옥이 제 사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절반은 건축가 김수근 선생을 위해, 절반은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현대미술을 위해 사용할 겁니다. 공간사옥을 미술관으로 새 단장해 내년 9월쯤 재개관할 예정입니다.”
“150억원은 적당한 가격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요구한다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와 시간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답했다. 그는 구체적인 활용 계획에 대해 “미술관은 기본이고 부대시설인 사무실, 수장고, 아트숍, 카페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계 일각에서는 사업가이자 컬렉터이고 ‘씨킴’이라는 예명의 작가로도 활동하는 김 회장이 공개경매에서 유찰된 공간사옥을 ‘얼씨구나 잘 됐다’는 식으로 덥석 낚아챘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김 회장은 “공간사옥은 건축적 아이덴티티가 가장 큰 메리트다. 그것을 살릴 수 있는 전시를 1년에 한 번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데미언 허스트와 마크 퀸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 3700점을 보유한 그는 ‘미술계의 큰 손’ ‘불도저 아트비즈니스맨’ 등으로 불린다. 어떤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물었더니 “나는 그냥 씨킴이다”라고 말했다. 아티스트로도 활동하는 것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는 “만족은 없다. 발전이 중요하다. 하지만 작업하는 순간만큼은 행복하다”고 답했다.
1978년 대학졸업 후 천안고속버스터미널 손바닥만한 매점을 모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김 회장은 공격적인 경영으로 사업에 성공했다. 10여 년 만에 고속터미널은 물론이고 근처에 야우리백화점을 지어 돈을 벌었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 충청점을 인수한 그는 적극적인 미술품 구입으로 미국 미술잡지 ‘아트뉴스’가 선정하는 ‘세계 200대 컬렉터’에 다섯 차례나 오르기도 했다.
“컬렉션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심플 위드 솔(simple with soul)”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무엇보다 작가의 영혼이 담긴 작품이 중요해요. 그런 작품은 그 자체로 힘을 발산하지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에서 이를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얼마 전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작품을 봤는데 순수한 영혼이 담겨 있더라고요.”
서울 및 천안 갤러리와 제주도 작업실을 오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수시로 해외 전시도 참관하는 그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것 같다. “이토록 열정적으로 사는 원동력은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그는 “꿈! 꿈! 꿈! 나에게 꿈이 없었다면 그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높은 산을 올라가는 과정은 힘들지만 정상에 선 즐거움을 알기에 고통을 참아낸다”고 역설했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나중에 어떻게 할 생각인지 궁금했다. “대중들에게 모두 보여줘야죠. 특히 학생들과 젊은 사람들이 작가의 순수한 영혼이 담긴 작품을 보고 느끼며 각자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 항상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영혼의 힘과 원동력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아트(예술)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미술관이 들어서더라도 건물 명칭은 ‘공간’이라는 이름을 살릴 계획이다. ‘스페이스 위드 아라리오(Space with Arario)’ ‘아라리오뮤지엄-스페이스’ 식이다. 김 회장은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진 전시를 통해 주말에 관람객들이 줄서게 할 자신이 있다. 이곳에서 현대미술 작가는 물론이고 건축가의 꿈을 그리는 젊은이들이 나오게 할 것”이라며 웃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