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크리스천의 공존 현장을 가다] (3·끝) 한국 역사박물관 지키는 日기독인들
입력 2013-12-08 20:22 수정 2013-12-09 01:29
“과거의 잘못 日 젊은이들이 알아야 합니다”
“네? 한국에서 오셨다고요?”
지난달 27일 오후 도쿄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의 고려박물관. 건물 7층 입구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60대 후반의 일본인 여성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한국인이 좀처럼 찾지 않는 곳인데다 기자가 박물관 소개까지 부탁하자 그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높은 분’을 데리고 나왔다.
눈앞에서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를 건네는 이는 하라다 교코(여·72)씨. 고려박물관 이사를 맡고 있다고 했다. 70여명의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대모’로 통한다.
그와 함께 둘러본 박물관은 231㎡(약 70평) 정도나 될까. 일반 박물관과 비교하면 작고 협소한데다 전시 품목도 많지 않아 전문가 입장이라면 초라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에서는 ‘그림책으로 알아보자, 이웃나라’라는 타이틀로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담뱃대를 문 호랑이 그림 같은 풍속도와 한국 전통의상, 한글 동화 등 책 등이 전시돼 있었다. 5∼6명의 자원봉사자들과 방문객 두세 명이 눈에 띄었다. 모두 일본인이었고, 나이도 60세가 넘어 보였다.
“자원봉사자가 70여명 되는데, 그중 90%가 일본인입니다. 또 전체 회원 700여명 가운데 60대 이상이 80%를 넘어요.” 하라다씨의 설명이다. 이들 자원봉사자는 요일별로 조를 나눠 고려박물관 안내와 회원관리, 프로그램 진행 등을 담당한다.
주된 수입원은 1인당 400엔(4000원 정도) 정도 하는 입장료와 일본인, 재일한국인, 재한일본인을 중심으로 한 회원들이 십시일반 내는 회비가 전부다. 주일 한국대사관 등 양국 정부 기관에서의 지원은 전무하다. 일본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의 한국사박물관이 일본인 자원봉사자들의 ‘고군분투’ 속에 꾸려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들어서는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일본인 방문객이 급감했다.
하라다씨에게 물었다. 왜 일본인들이 고려박물관을 앞장서서 지키고 있는지.
“일본인들, 특히 젊은이들이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았으면 해서요. 특히 이웃 나라에 행한 과거의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면 반드시 용서해주시는 따뜻한 분이시거든요.”
크리스천인 하라다씨는 자신의 과거 얘기를 잠시 들려줬다. 일반 중학교 및 장애인 학교에서 사회과목 교사로 30년 동안 근무한 뒤 정년 은퇴한 그는 2002년 5월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한국의 최대 사회복지 시설인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1년, 사회복지 단체인 ‘광명 사랑의 집’에서 1년 넘게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섬겼다.
“과거 일본의 만행에 사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자원봉사자 상당수는 그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라고 했다. 그 가운데에는 용서와 화해를 위해 기도하는 크리스천 여성들도 있지만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섬긴다. 박물관 입구에서 기자를 맞이했던 가가야 히로코(여·68)씨도 그런 크리스천 중 한 명이다.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함께 살아가는 길임을 그들은 조그만 역사박물관에서 안내하고 있었다.
도쿄(일본)=글.사진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