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소 바꾸세요” 신종 낚시… 기막힌 보이스피싱

입력 2013-12-09 02:40


직장인 허모(37)씨는 8일 오전 평소 거래하던 외환은행에서 전화를 받았다. 은행 상담원이라는 여성은 허씨에게 “내년부터 고객 정보의 동주소를 도로명주소로 바꿔야 한다”며 “고객 동의를 거쳐 자동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 보이스피싱과 달리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고 발음도 정확했다.

상담원은 “개인정보를 확인해야 한다”며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누르라고 했다. 이후 기계음으로 “개인정보는 본인 확인을 위해서만 사용되니 안심하십시오”라는 안내 멘트가 나왔다. 허씨가 7자리 숫자를 누르자 상담원은 허씨의 외환은행 계좌번호를 부르면서 “고객님 계좌가 맞습니까”라고 확인했다. 자신의 계좌번호를 대는 외환은행 상담원을 허씨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 다음부터였다. 상담원은 주소를 바꾸려면 인터넷뱅킹 수준의 보안체계를 거쳐야 한다며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연결할 테니 비밀번호 네 자리를 누르라”고 했다. 금융기관에서 통상 사용하는 방식이지만 허씨는 주소 바꾸는데 비밀번호까지 요구하는 점이 수상해 입력하지 않았다. “입력 시간이 초과됐으니 한 번 더 눌러 달라”고 재촉하던 상담원은 허씨가 “보이스피싱 아니냐”고 하자 바로 전화를 끊었다.

허씨는 “평소 은행 잔액을 확인하거나 전화로 이체할 때 안내하는 목소리라 의심하지 못했다”면서 “주소 바꾼다고 비밀번호까지 누르라는 게 수상해 한번 더 확인한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허씨의 휴대전화에 찍힌 발신번호(1588-3110)로 여러 차례 전화했지만 통화 중이거나 받지 않았다.

내년부터 도로명주소가 전면 시행되는 점을 악용한 신종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은행들은 실제로 주소 변경 작업을 진행 중이다. 외환은행도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말까지 주소 변경 확인 전화를 걸고 있다. 그러나 주민번호만 직접 누르게 할 뿐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는 묻지 않는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현재 각 분야에서 동주소를 도로명주소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금융기관을 사칭한 사기 행위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