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파견근로자 업무상 재해, 사용사업주도 책임”

입력 2013-12-09 01:42

파견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를 입은 경우, 고용주뿐만 아니라 실제 사용사업주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근로자와 별도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사용사업주에게 업무상 재해 책임을 물은 첫 대법원 판결로 향후 근로자보호의 범위를 넓게 인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신우이엔비의 파견근로자 최모(27)씨가 실제 사용사업주인 평화산업과 신우이엔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들은 함께 74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사용사업주와 파견회사는 근로자 파견계약을 맺었으므로, 사용사업주와 근로자 사이에는 안전배려의무를 다하겠다는 묵시적 합의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신우이엔비 근로자인 최씨는 2005년 11월 자동차 및 장비시설용 부품 제조·판매 사업자인 평화산업에 파견돼 근무했다. 최씨는 일을 하던 중 사출기 안에 오른쪽 팔과 손목이 끼이는 상해를 입었다. 사출기에는 안으로 손이 들어오면 이를 감지해 멈추는 안전장치가 있었지만 최씨가 사고를 당하던 때에는 작동하지 않았다. 최씨는 신우이엔비뿐만 아니라 평화산업을 상대로도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신우이엔비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했지만 평화산업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평화산업이 최씨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만큼 최씨가 입은 손해에 대해서도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1심은 신우이엔비만 최씨에게 74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씨와 평화산업 사이에 직접 근로계약이 없더라도 사용사업주가 파견된 근로자를 보호하고 안전배려를 하겠다는 약정이 묵시적으로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고용주와 실제 사용사업주가 함께 7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이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의 고용관계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산업재해에 관한 근로자 보호의 범위를 넓게 인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