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차창훈] 中 방공식별구역 선포 파장
입력 2013-12-09 01:42
중국은 지난달 23일 한국 관할인 이어도, 일본과 영유권 분쟁이 첨예한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포함한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ADIZ)을 선포했다. 중국 국방부는 “이 구역을 지나는 항공기는 중국에 국적과 비행계획 등을 사전에 통보해야 하며 수시로 중국 국방부와 무선통신 등으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즉시 감시·통제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방공식별구역이란 주권이 미치는 영해나 영공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들은 영공 방위를 위해 영공 외곽 공해상의 상공에 일정한 공간을 설정, 방공식별구역으로 선포한다. 국제법적 근거는 없고, 국제법적으로 보장되는 공해상의 자유를 오히려 침해한다. 해양 강대국은 첨단 기술 무기의 발달로 인한 세력권 확대를 목적으로 영해와 영공을 대폭 확대하고자 한다.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통해 공해의 상공도 ‘사실상 영공’과 마찬가지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날 서태평양의 방공식별구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구획한 것으로 중국의 이번 조치는 현상 변경을 의도한 것이다. 중국은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등 해군력을 증강해 왔고, 2011년부터 ‘핵심 이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영토분쟁을 둘러싼 서태평양 해역에서 자국의 이익 확장을 시도해 왔다. 더욱이 2012년 제18차 공산당 전당대회로 집권한 시진핑은 ‘신형대국관계’ 개념을 통해 미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공세적인 외교로의 전환을 시사해 왔다.
또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의 핵심 목적은 센카쿠 열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약화시키고 서태평양에 대한 중국의 장기적인 접근권을 확장하려는 것이다. 시진핑은 이미 1년여 전부터 동중국해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 왔다. 이번 정책이 국방부 발표로 이루어진 점은 인민해방군이 정책결정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음을 시사한다.
최근 영토분쟁을 둘러싼 중·일 간 갈등은 절정에 달해 왔다. 지난 10월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한 바 있는데, 우경화되는 아베 정부를 중국을 상대할 동북아의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정책도 중국의 결정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판단된다. 중국은 남중국해에도 방공식별구역을 새롭게 선포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한·중·일 3국을 긴급히 방문해 이 문제를 조율했지만 영토를 둘러싼 3국의 긴장과 갈등은 매우 우려된다. 우선 미국 국무부는 지난달 29일 발표한 성명에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서 미국 민간 항공기들이 관련 절차들을 준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정부는 자국의 항공사에 중국에 비행 계획을 알리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중국이 민간 항공기에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는 대응을 할 리는 없겠지만(그렇게 믿고 싶지만) 한국과 일본 정부의 지침은 민간인들의 비행안전을 중국 의지에 맡기는 상황이 된다. 장기적으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중국과 일본의 비행체가 이 구역에서 충돌해 군사적인 긴장을 초래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 측과 협의 후 이어도 등을 포함하는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새롭게 확정했다. 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관심을 표명하며 사실상 협상에 참가하기로 발표했다. 우리 정부의 지나치게 즉자적인 대응이 안타깝다. 중국이 주변국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도 문제지만 사실상 중국이 도발한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동북아의 영토분쟁 갈등을 상승시키고 있다. 더욱이 국내 경제 이해관계 등을 신중히 고려해야 할 TPP 참여를 아주 신속하게(?) 결정해 버렸다. 미·중·일의 힘겨루기 게임에 단순하게 개입한다면 한국의 입지는 지극히 취약해질 것이다. 한국은 일방주의 외교가 아닌 다자주의 외교의 틀을 지역 내에서 제도화하려는 입장을 취해야만 국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차창훈(부산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