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 광주, 한방병원 전성시대] 한방병원 3.5개 중 1개꼴 광주 몰려… 도대체 왜?

입력 2013-12-07 01:30


6일 오전 광주광역시 화정4거리. 광주∼송정 간선도로의 배꼽에 해당되는 이 거리 인근에는 형형색색 화려한 간판을 내건 한방병원 4곳이 성업 중이다. 이곳에서 버스정류장 4∼5개 거리인 상무지구에도 한방병원 4곳이 있다.

통행이 분주한 화정4거리와 번화가인 상무지구만이 아니다. 2개 지역과 삼각 축을 이루는 금호동에도 수년 전 2곳의 한방병원이 둥지를 틀었다. 반경 3∼4㎞ 안에 크고 작은 한방병원 10곳이 환자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빛고을 광주가 한방병원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광주 도심에서 개원한 한방병원은 11월말 현재 61곳으로 전국 17개 시·도 전체 211곳(2013년 9월말 대한한방병원협회 집계)의 29%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 150만명 안팎으로 도시 규모가 비슷한 대전(5곳)의 12배, 덩치가 더 큰 대구(3곳)의 20배를 훌쩍 넘는다. 인구가 7배가량인 1000만 도시 서울(31곳)과 경기도(34곳)에 비해서도 배가량 많다. 전북(20곳), 인천(14곳), 전남(12곳), 부산(9곳), 경북 (8곳), 경남(5곳), 충북(4곳), 울산(3곳), 충남(3곳), 강원(2곳) 등 다른 광역 시·도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광주 한방병원의 역사는 3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6년 원광대한방병원이 최초로 개업했다. 10여년간 외롭게 독주하던 이 병원에 이어 동신대한방병원이 89년 문을 열었고 꼭 10년 뒤 동광주청연한병병원이 들어섰다. 한동안 뜸하던 한방병원 개업은 2010년 이후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 올 들어서만 20여곳이 경쟁대열에 뛰어들었다(표 참조).

국내 전체 한방병원의 4분의 1 이상이 광주에 집중돼 있는 이유는 뭘까. 한의사 등 업계 종사자들은 무엇보다 한방을 선호하는 특유의 지역정서에서 원인을 찾는다.

진맥을 받아 정성껏 한약을 달여 먹거나 침을 맞으면 만성질환이 낫는다는 강한 믿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노인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탓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광주와 한 뿌리인 전남지역의 65세 이상 노령인구 비율은 20.4%로 전국 최고다. 5명 중 1명이 노인인 셈이다. 국내 고령인구는 올해 처음으로 600만명을 돌파했다.

전통적으로 한의학이 발달한 지역적 특성에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동의보감을 지은 조선시대 명의 허준(1539∼1615)이 어릴 적 호남지역에서 의술을 배웠다는 것이다.

광주시한의사회 관계자는 “당시에는 어린 시절을 외가에서 보내는 풍조가 널리 퍼졌는데 바로 허준의 외가가 호남”이라고 말했다. 관노 출신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광해군과 선조에게 침을 놓았던 침술의 대가 허임(1570∼1647·추정)도 나주 출신이다.

인삼으로 유명한 화순 등 한약 재배의 명소들이 인근에 많다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호남은 전통적으로 침술을 비롯한 한의술이 발달한 지역이라는 논리다. 한의를 가르치는 대학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전국에 한의대는 11곳이 있는데 이 중 3곳이 호남권에 있다. 전남 나주의 동신대, 전북 익산의 원광대, 전주의 우석대 등이다. 연고지에서 개업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광주지역에 한의원과 더불어 한방병원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광주지역 건물 임대료가 다른 곳보다 월등히 저렴하다는 경제적 관점에서 한방병원 증가의 배경을 설명하기도 한다. 한의사 경력 20여년의 박모(55)씨는 “만일 서울 강남이나 다른 도시 한복판에서 한방병원을 운영한다면 아무도 수익을 내지 못할 것”이라며 “광주는 임대료가 월등히 낮아 한방병원을 하기에 매우 적합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폭발적 증가에 따른 과당경쟁 등 역기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방병원이 우후죽순 늘면서 빈 병실을 채우기 위해 무조건 입원을 종용하고 의료수가를 과다·허위 청구하는 부작용도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영석 광주시 건강정책과장은 “허술한 절차를 밟아 한방병원에 입원한 뒤 보험금을 부당하게 받는 환자가 늘고 있다”며 “건강보험료의 손실을 막기 위해 한방병원들의 의료법 위반여부에 대한 단속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