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금융계열사 4년 만에 배 늘어… 총수일가 지배력 갈수록 확장
입력 2013-12-06 01:32
재벌이 금융계열사를 활용해 다른 계열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벌이 보유한 금융·보험사 수가 4년 만에 갑절로 늘어났다. 금융계열사가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확장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금산분리’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가 5일 발표한 ‘2013년 대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 현황’에 따르면 62개 대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 이상) 중 32개 집단이 164개 금융·보험사를 보유하고 있다. 금융·보험사는 2009년 82개사, 2011년 136개사로 급증하고 있다.
금융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에 의결권을 행사하는 횟수도 늘고 있다. 2010년 6월부터 지난 3월말까지 69개 금융·보험사는 148개 계열사의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1771회 행사했다. 2010년 조사(1039건)보다 크게 늘어난 것이다. 대부분 적법한 의결권 행사였지만 계열사 주식에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의결권 행사한도 15%를 초과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횟수도 32회나 됐다.
주목해야 할 대기업집단은 삼성이다. 법 위반 32건 중 12건은 삼성이 차지했다. 삼성이 교보생명보험과 공동지배한 생보부동산신탁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계열사 주식에 의결권을 행사해 공정위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았다. 또 위법은 아니지만 다른 계열사의 임원임명이나 정관변경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 60건 중 57건이 삼성의 몫이었다.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행사는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장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민주화의 핵심과제로 꼽혀왔다. 당초 의결권 행사한도를 15%로 정한 규정은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으로부터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대기업집단의 지배력 확장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기업집단의 금융·보험업 진출이 늘고 있어 지배력 확장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상 금융·보험사가 계열사에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지만 예외 규정을 두면서 틈새가 조금씩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정위는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을 신규순환출자 금지와 함께 경제민주화 입법의 최대 과제로 꼽는다. 현재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이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특수관계인을 포함한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행사한도를 15%로 유지하되 금융계열사만의 의결권 행사는 5%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이 대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내년 예산안 처리에 급급한 국회 사정을 감안할 때 경제민주화 입법에 힘이 실리기는 쉽지 않다.
세종=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