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스파·피부관리실 등 고급 마사지 업소, 비장애인 안마사 불법 고용 수두룩
입력 2013-12-06 02:39
태국 정통 마사지, 아로마 테라피, 릴렉싱 케어….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사람이 손으로 몸을 두드리고 주물러 근육 피로를 풀어주는 안마 행위가 이뤄지는 곳이다. 안마 영업이 최근 고급화, 대중화되면서 이런 이름의 업소가 급증했다.
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과 압구정동에는 수많은 마사지 업체가 ‘스파’나 ‘피부관리실’ 같은 간판을 내걸고 영업 중이다. ‘안마’란 단어를 직접 상호에 사용한 곳은 없었다. 업소들은 안마 코스를 설명하는 입간판에도 ‘○○○ 케어’ ‘△△△ 테라피’ 등의 표현을 썼다.
이런 마사지 업소는 강남구에만 400곳이 넘는다. 그러나 마사지사로 시각장애인을 고용한 곳은 찾기 어렵다. A업소 관계자는 “우리 고객은 주로 고급 피부관리를 받는 분들”이라며 “시각장애인을 쓰면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안마를 해주는 이런 마사지 업체는 모두 불법이다. 의료법상 안마업소는 시각장애인만 안마사로 고용할 수 있게 규정돼 있다. 그러나 마사지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현실과 법 사이에 괴리가 생겨 사실상 단속은 어려운 상황이다. 갈 곳이 없어 불법 유흥업소로 밀려난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결국 “의료법을 엄격히 적용하라”며 법적 대응까지 하게 됐다.
서울서부지법은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대한안마사협회가 기업형 프랜차이즈 마사지업체 ‘더 풋샵’에 대해 제기한 영업정지 가처분신청 사건을 심리 중이다.
안마사 자격을 둘러싼 시각장애인과 업주들의 갈등은 자그마치 한 세기 동안 계속돼 온 문제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시각장애인의 안마사 독점 조항이 담긴 칙령을 내린 게 시작이었다.
지난 6월 27일 헌법재판소는 서울중앙지법이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제청한 위헌법률심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안마업은 시각장애인들에게 거의 유일한 직업이어서 이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게 헌재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허울뿐인 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대근 대한안마사협회 사무총장은 “2000년대 초반 대형 마사지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안마로 생계를 잇던 시각장애인 대부분은 생활고에 빠졌다”며 “의료법이 무용지물인 상태”라고 주장했다.
마사지 업체는 계속 늘고 있다. 통계청의 전국사업체조사 산업분류별 현황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마사지업 종사자는 1만5667명이다. 2008년 1만3176명에서 꾸준히 증가해 왔다. 업체 수는 6797개, 시장 규모는 5000억원대로 추정된다. 이 중 시각장애인 안마사는 9000여명, 이들을 고용한 업소는 1000여개뿐이다.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불법 업체 수가 너무 많아 단속이 어렵다”며 “신고가 들어오면 벌금을 부과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다보니 많은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불법 유흥업소로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