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권력지형 변화] 유일영도체제 위협 땐 숙청… 北 로열패밀리 계속되는 ‘잔혹史’
입력 2013-12-06 01:50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사태를 계기로 1인 지배체제에 위협이 된다는 판단이 들면 이른바 ‘로열패밀리’도 가차 없이 내모는 북한식 ‘처단사(史)’는 다시 한번 분명해졌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고모부 장 부위원장을 실각시킨 것은 자신의 후견인임에도 불구하고 출범 2년을 맞은 자신만의 체제 공고화에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은 역사적으로 볼 때 최고권력에 버금가는 2인자를 오래 놔두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예는 김 제1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다. 김정남은 2001년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체포된 이후 평양에 입성하지 못하고 중국과 마카오 등을 떠도는 생활을 계속해야 했다. 한때 북한 요원들의 암살 시도설이 나돌았고, 중국이 김정남을 해치지 못하도록 북한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는 2011년 12월 자신의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의 장례식에도 불참했다. 김정남의 아들이자 김 제1위원장 조카인 김한솔도 외국생활 중이다.
둘째형인 김정철 역시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밀려난 뒤 정확한 소재는 파악되지 않는다. 북한과 외국을 오가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후계구도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만한 형제, 친척 등은 거리낌 없이 권력 핵심부에서 배제했다.
김 위원장의 이복동생 김평일은 1970년대 김 위원장과의 후계경쟁에서 밀린 이후 주로 동유럽 국가들을 전전했다. 헝가리 폴란드 불가리아 대사를 맡았지만 이는 사실상 유배나 다름없었다. 그는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에도 평양에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의 또 다른 이복동생 김영일도 외교관 신분으로 여러 국가를 옮겨다니다 2000년 독일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또 다른 경쟁자였던 자신의 작은아버지 김영주도 숙청했다. 김영주는 20년 가까이 변방을 떠돌다 김 위원장이 완전히 권력을 장악한 뒤인 1990년대 들어 부주석으로 복권됐지만 이는 실권이 없는 명예직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