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국민은행 어쩌다… 합병 통해 컸지만 조직엔 잡음만

입력 2013-12-06 02:31


리딩뱅크의 추락 왜

금융감독원은 KB국민은행에 대해 특별검사를 벌이고 있다. 11명의 검사요원을 투입해 국민주택채권 90억원 횡령 사건, 도쿄지점 비자금 의혹, 보증부대출 부당이자 수취 의혹 등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전례 없는 대규모 특검 배경과 관련, 금융당국 관계자는 5일 “국민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들여다보니 엉망”이라고 전했다.

‘리딩뱅크(선도은행)’를 자부하던 국민은행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 금융권 일각에서는 최근 연이어 터진 국민은행 관련 의혹은 갑자기 벌어진 게 아니라 구조적 문제가 곪다가 표면화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부조리의 주원인으로 “외환위기 이후 본인들의 노력이 아닌 외부 환경에 의해 갑작스럽게 리딩뱅크로 올라선 데 안주하면서 타성에 젖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민 대상 여·수신을 주로 해온 국민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그야말로 위상이 180도로 바뀌게 된다.

당시 기업금융에 주력한 조흥·제일·상업은행 등이 대출부실로 주저앉은 사이 상대적으로 외환위기 타격을 덜 받은 국민은행이 어부지리로 선두권에 올라섰다. 여기에 퇴출당한 대동은행을 흡수한 데 이어 1998년 말 기업·국제금융 분야의 선두주자였던 한국장기신용은행(장은)과 합병하면서 일약 국내 최대 은행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문제의 싹은 이때부터 트기 시작했다. 국민은행은 합병의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신한·하나은행 등이 타 은행과의 합병 이후 적극적인 화합을 도모하면서 도약의 계기로 삼은 것과 비교된다. 특히 국민은행과 장은의 합병은 서민금융과 기업금융의 시너지를 통해 대외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차원에서 진행됐지만 결과적으로 이 합병은 실패했다는 게 중론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MBA(경영학 석사) 출신 등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고학력 인재를 다수 보유한 장은은 절대적으로 인원이 많은 국민은행의 텃세 등으로 장점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이 합병 이후에 체질개선을 등한시한 점은 장은 인력의 엑소더스를 불렀다. 합병 전후 1040명에 달했던 장은 출신 직원은 증권사, 벤처캐피털, 법조계 등으로 잇따라 자리를 옮겼고, 현재 남은 200여명이 거대한 국민은행에 존재감도 없이 흩어져 있다.

장은 출신 A씨는 “1명이 할 수 있는 일을 10명이 하고 있었다. 생산성이 형편없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지적했다.

퇴직한 또 다른 장은 출신 B씨는 “국민은행 상사와 일했을 때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등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됐다. 이런 일이 한번 두 번 반복되면서 일에 대한 성취감도 사라져 그만둬야 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의 구태의연함은 국민은행 출신의 입에서도 확인된다. 명예퇴직한 뒤 최근 프리랜서 신분으로 국민은행의 전산작업을 잠시 도왔던 C씨는 “제3자의 시각으로 보니 상당히 심각했다. 일처리가 너무 느슨하고 한두 명 빼고는 노는 사람이 많아 놀랐다”고 토로했다. 소수인 장은 출신에 대한 국민은행식 업무행태 강요도 이에 한몫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지금 생각할 때 장은을 수출입은행이나 산업은행과 합병시켰더라면 우리나라 금융산업에 훨씬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년 전 기자에게 “국민은행은 장은 인력을 활용하지 못한 데 따른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3년의 국민은행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예언은 적중해 보인다.

국민은행은 2001년에 주택은행과 합병한다. 국민과 주택은행은 인원수가 비슷해 일방의 텃세는 작용하지 못하는 구조였다. 대신 1채널(국민은행), 2채널(주택은행)로 갈라진 채 철저한 나눠먹기가 시작됐다. 이런 구조는 한쪽으로 균형이 쏠리면 상대방의 험담을 불러일으키는 기제로 작용했다. 최근 터진 보증부대출 부당 이자 수취건과 국민주택채권 90억원 횡령 사건도 이런 상황에서 노출됐다는 게 정설이다. 여기에다 지주회사인 KB금융의 최고위직 낙하산 인사로 인한 후유증도 국민은행 비리와 내부통제 불능에 불을 지핀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국민은행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채널 관리를 한다는 의심을 없애기 위해 합병 후 직원코드를 통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지난달 창립 12주년 기념식에서 고질적인 파벌문화를 두고 ‘퇴행적 행동’이라며 일침을 가할 정도로 파벌 싸움은 여전하다.

무사안일의 대가는 컸다. 현재 국민은행은 리딩뱅크의 영화를 잊은 지 오래다. 은행 직원 개개인의 생산성은 경쟁상대인 우리·하나·신한은행은 물론이고 전체 은행권에서도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금감원 자료를 보면 국민은행의 1인당 당기순이익은 2011년 9600만원에서 지난해 620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나머지 3대 은행은 물론이고 경남(9200만원), 광주(8600만원), 제주(7300만원) 등 지방은행에도 못 미친다. 산업은행(3억7200만원)보다는 6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또 가계금융에만 주력한 결과 현재 가계부실 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국민은행이 가계금융에 주력했지만 리스크 관리에는 문제가 있었다”며 “기업금융의 노하우를 지닌 장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 기업금융에서도 별로 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고세욱 한장희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