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속에서 길 잃은 우리를 위하여… 박찬순 소설집 ‘무당벌레는 꼭대기에서 난다’
입력 2013-12-06 01:34
대관절 생은 언제 완성되는가. 내가 이룰 수 없는 꿈을 남들이 대신 꾸어줄 리도 만무하고 역전 드라마 같은 것도 없을 테니. 환갑 나이에 등단한 늦깎이 소설가 박찬순(67)의 두 번째 작품집 ‘무당벌레는 꼭대기에서 난다’(문학과지성사)를 읽고 난 소회이다.
박찬순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거개가 길을 잃는다. 수록작 ‘압록 교자점’의 ‘나’는 3년 전 금강산에서 이산가족상봉을 한 북한의 삼촌으로부터 온 메시지가 있다는 조선족의 연락을 받고 끊어진 압록강 철교가 있는 중국 단둥으로 간다. 삼촌은 학창시절에 천재로 소문이 날 만큼 공부벌레였고 마르크스 독서모임에 빠져 월북했는데 ‘나’의 아버지는 그런 삼촌을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고향인 상주가 아닌 서천에 정착한 사람이다. ‘나’는 초조한 기다림 끝에 조선족 남자 두 명을 압록 교자점에서 만나 삼촌이 보냈다는 약재를 전달받은 뒤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 머물고 가라는 조선족 남자의 제의를 받고 망설이게 된다. “두 사람을 따라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는 갈림길에 선다. (중략) 아니야. 다 쓸데없는 짓이야. 이랬다저랬다 마음을 뒤척이면서 나는 심한 무력감을 느낀다.”(‘압록 교자점’에서)
‘소라고둥 공화국’의 동시통역사 ‘나’는 악령처럼 따라붙은 제임스의 소라나팔 소리 때문에 심적 고통을 겪는다. ‘나’는 미국의 한 고등학교 교사인 제임스의 소리나팔 연주법 강의를 위한 동시통역사로 투입되는데 제임스는 대학시절인 20년 전 ‘나’의 첫 사랑이자 번역의 감각을 익히게 해준 선배이다. 이제 제임스의 소라나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통렬한 후회에 사로잡힌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몸이 닳아지도록 내 자신을 채찍질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왜 항상 목이 마른지. 어디서나 선방의 눈길을 받으면서 일하고 출장 가는 도시마다 전화만 하면 달려오는 남자를 두었는데 말이야.”(‘소라고둥 공화국’에서)
‘나’는 동시통역사로 돈과 명예를 얻었고 남들의 눈을 피해 즐길 수 있는 연인까지 두었으나 실상 “살점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은 뼈다귀, 해골 일 뿐”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믿었던 삶이 실은 그저 ‘살아지는 삶’에 불과했다는 자괴감 앞에서 ‘나’는 길을 잃고 만다.
‘나폴레옹의 삼각형’의 주인공인 사진작가 ‘나’ 역시 길을 잃고 미로를 헤매는 인물이다. ‘나’는 4년 전 일본 센다이의 공원에서 일하는 정원사 모리 하야시를 취재했는데 그는 폭설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삼각형 모양의 줄을 묶는 유키즈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에게도 나만을 감싸는 삼각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나’는 그런 모리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두 사람은 이후로도 교제를 하지만 관계는 깊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대지진과 쓰나미 소식이 들려오고 ‘나’는 해일이 덮치고 있다는 센다이 해안으로 야간 운전을 해 달려간다.
“오로지 나 혼자서 미로로 대결할 요량이었다. 몇 시간째 끝나지 않고 있는 이 구불구불한 산길 대(對) 자동차 안의 한 사람. 돌이켜보면 나 자신은 언제나 그렇듯 미로에 갇힌 인간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정수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외로움이 내리 꽂히는 듯했다. 내가 전에 있던 곳에서는 만날 수 없다는 말일까. 유키즈리를, 나폴레옹의 삼각형을.”(‘나폴레옹의 삼각형’에서)
박찬순의 소설 속 인물들은 이렇듯 미로를 관통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길을 잃음으로써 그들이 목적하는 길에 가까이 진입한다. 또 안정적인 삶을 의미하는 삼각형을 놓침으로써 오히려 그것이 안정적인 삶을 계속 추구하게 하는 추동력이 되고 있다. 미로 위에서 자주 길을 잃는 현대인의 서늘한 가슴 속 공백을 드러내 보이는 창작집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