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동독 저항작가 볼프 대표작 ‘몸앓이’ 국내 초역

입력 2013-12-06 01:34


구동독을 대표하는 작가 크리스타 볼프(1929∼2011)의 후반기 대표작 ‘몸앓이’가 국내 초역됐다. 볼프는 2차대전 이후 독일 현대문학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여성 작가이다. 통일 후에도 볼프에게 동독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늘 곱씹게 되는 현재형 테마였고, 2002년 발표한 ‘몸앓이’는 그 문학적 결산으로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다.

“나는 엄마의 병실 창가에 서 있고, 엄마의 눈으로 나를, 여름 햇살을 뒤로한 검은 실루엣으로 보이는 나를 바라본다. 내가 하는 말이 들린다. ‘프라하로 진군해 들어갔어.’ 엄마가 속삭이는 말이 들린다. ‘더 안 좋은 일도 있는데, 뭐.’ 엄마는 고개를 벽 쪽으로 돌린다. 더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 엄마가 죽는다. 난 프라하를 생각한다.”(10쪽)

한 환자의 병원 체류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여성 화자의 독백을 통해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발병과 수술, 치유의 과정을 다룬다. 하지만 낙후된 설비, 턱없이 부족한 의료품 등 병원의 열악한 현실은 동독사회가 처한 위기와 붕괴의 징후를 고스란히 드러낼 뿐이다.

“‘선(善)하다’라는 짧은 말이 수술실에 침입한다. 선하다. 선하다. 선하다. 어린 시절 귀가 닳도록 들었던 기본 운율이 아니었나? 선하다고?”(50쪽)이라든지 “여기 전구는 오랫동안 빠져 있었나보다. 누구도, 심지어 전화국 직원도 여기서는 길을 잃을 일이 없으니, 몇 년 전부터 여기서 불빛을 필요로 했던 사람은 없었다”(100쪽) 등의 문장이 그것.

전기적으로 볼 때도 질병은 볼프와 관련이 깊다. 동독작가연맹 회원이자 통합사회당 중앙위원 후보였던 그는 예술가를 옥죄는 정책을 가시화한 1965년 11차 당 대회에서 예술의 자유를 옹호하며 당을 비판하는 연설을 한다. 이로 인해 그는 정치적 탄압을 받는데, 우연하게도 연설 직후 심장발작을 일으킨다. 이후에도 몇 차례 병마에 시달린 적이 있으며 통일 후에도 마녀사냥에 가까운 비판을 받고 다시 쓰러지고 만다. 주인공이 베를린에 거주하는 작가로 설정된 점, 당과 협력하는 관계에서 점점 불신으로 바뀌게 된다는 점 또한 작가의 전기적 요소와 일치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