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맹경환] 기후변화의 불공정성
입력 2013-12-06 01:28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11일부터 23일까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가 열렸다. 필리핀 수석 대표였던 예브 사노 기후변화담당관은 총회 개막일부터 폐막일까지 꼬박 13일 동안 단식을 했다. 초강력 태풍 하이옌이 조국 필리핀을 할퀴고 간 참상을 알리고 총회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내달라는 호소가 목적이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의 아버지는 가장 큰 피해를 남겼던 타클로반에 살고 있다고 한다. 회담 전 일본, 호주 등 선진국들의 역주행에 더욱 다급했을 수도 있다. 일본은 총회 직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25% 감축’에서 ‘2005년 대비 3.8% 감축’으로 하향조정했다. 호주는 최근 탄소세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보수 정권이 들어선 뒤 총회에 대표단도 보내지 않았다.
사노씨의 목숨을 건 단식 덕분일까. 총회에서는 의미 있는 결과가 하나 나왔다. 190여 개국의 대표들은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원칙에 입각한 ‘바르샤바 메커니즘’에 합의했다. ‘손실과 피해’는 태풍과 같은 단기적, 극단적 자연 재해는 물론 사막화와 해수면 상승 등 서서히 발생하는 장기적 재해를 말한다. 기후변화로 고통 받는 나라들을 위해 위험 관리와 재원 마련 등을 해주는 별도의 집행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바르샤바 메커니즘’의 핵심이다.
가난한 개발도상국의 논리와 요구는 시종일관 간단했다. 기후변화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선진국들이 기후변화 피해국들의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도국들의 억울함은 바로 ‘기후변화의 불공평성’에 있다. 자신들이 기후변화에 ‘기여’한 바가 없기에 아무런 책임도 없는 일 때문에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나라들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이 기본적인 개념에 합의하는 데도 수십 년이 걸렸는데 실행까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옥스퍼드대 연구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5751억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선진국들은 이제부터 그중 자신들이 얼마나 기여했고, 그에 따른 보상액을 얼마씩 나눌지에 대해 다툼을 벌일 것이다.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유엔에 설치된 녹색기후기금(GCF)만 봐도 알 수 있다.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약 106조1000억원)의 재원을 마련키로 2010년 합의했지만 이제껏 구체적인 진전은 없다. 미국이 지난해 발생한 허리케인 샌디의 피해 복구 비용으로 600억 달러를 책정한 것만 봐도 1000억 달러라는 돈은 그리 큰 돈이 아니다.
선진국들이 미적대는 사이 가난한 나라에서 기후변화 문제는 발등의 불이다. 케냐는 지난 10월부터 우기(雨期)가 시작됐지만 막상 비가 온 날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기온 상승으로 고원 지대까지도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있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다. 소말리아는 최근 폭풍으로 곡창지대가 쑥대밭이 됐고 사망자도 100명이 넘었다.
필리핀처럼 수천 명의 사망자가 나와야 세계 언론과 구호 단체들의 관심이 집중될 뿐, 무관심 속에 고통 받는 국가들이 너무도 많다. 누구 책임인지를 인질로 붙잡고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 이산화탄소 정보·분석 센터(CDIAC)에 따르면 2010년 온실가스 배출량 순위에서 한국은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독일, 이란에 이어 8번째 국가다.
맹경환 국제부 차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