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F-35A 구매 협상 때 유념할 것들
입력 2013-12-06 01:33
“판 깰 수 있다는 비상한 각오로 구입가격 낮추고 기술이전하도록 협상력 발휘해야”
지난달 19일 록히드마틴 한국지사에 서면 인터뷰를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터뷰 대상자는 록히드마틴 조지 스탠드릿지 부사장이었다. 한국지사 측은 고맙다는 말까지 하며 흔쾌히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다.
한국지사가 반색한 것은 당연했다. 지난 9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단독 후보로 상정된 보잉의 F-15SE가 불합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차기 전투기(FX) 사업 3개 후보 기종 가운데 F-15SE만 우리나라가 책정한 예산 범위에 드는 가격을 제시했지만 작전요구성능(ROC)을 만족시키지 못해 탈락했다.
기사회생의 기회를 엿보던 록히드마틴으로선 패자부활이 가능하게 된 시점이었다. 그런 때에 홍보할 지면을 주겠다고 제안했으니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춤 추고 싶은 마당에 멍석까지 깔아주겠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F-15SE가 탈락하면 록히드마틴의 F-35A가 유리한 고지에 설 것이기 때문에 인터뷰 거리가 된다고 판단했다. F-35A에 대한 국민의 궁금증도 풀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질의서를 작성해 이메일로 보냈다. F-35A 판매 계약 현황, ROC 능력, 경쟁사가 제기한 일련의 비판에 대한 견해, 총 판매가격의 조정 가능성, 한국 공군의 전력 공백 우려 등 18개 항목으로 질의서를 만들었다. 한국지사에서 이메일 내용을 영문으로 작성해 본사에 전달하고, 답변을 한글로 번역해 건네주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군이 지난달 22일 합동참모회의를 열고 차기 전투기의 ROC를 첨단 스텔스 기능과 전자전 능력으로 수정한 것이다. 이러한 성능에 부합하는 전투기는 F-35A가 유일한 기종이다.
인터뷰가 성사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예상대로 록히드마틴 본사에서 태클을 걸었다. 가만히 있어도 한국에 F-35A를 판매할 수 있는데, 골치 아픈 질문에 답변하면서까지 홍보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판단한 듯했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갖고 있는 장사꾼의 교활한 속성을 보는 것 같았다. 질문 가운데 절반가량은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반응이었다. 판매가격을 포함해 민감한 내용은 미 정부가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FX 사업에는 혈세 8조3000억원이 들어간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도 F-35A 40대밖에 사지 못한다. 도입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유지비를 써야 한다. 한국은 경쟁입찰이 아니라 수의계약을 선택했다. F-35A는 전략무기인 탓에 기술이전 조건이 까다로운 정부 간 계약인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구매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확실히 ‘갑’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양국 협상 과정에서 정부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우선 구입가격을 최대한 깎아야 한다. FX 사업을 추진하면서 나머지 20대는 다른 기종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카드로 압박해야 한다. 록히드마틴이 아니라 미 정부와 담판 짓는 만큼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과 연계할 필요도 있다. 협상할 내용이 다르다고 미리 선부터 그을 까닭이 없다. 어차피 한국 주머니에서 나와서 미국 주머니로 들어가는 돈이 아닌가. 일본이 F-35A 구입을 결정하면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미국 동의와 지원을 얻어낸 점도 참고할 만하다.
기술이전 문제도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된다. 최신예 전투기의 기술이전이 우리 항공분야 발전에 기여할 것을 감안하면 가격보다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경쟁기종이었던 F-15SE나 유로파이터 제작사는 파격적인 기술이전을 약속한 반면 록히드마틴은 아주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 사업에 도움이 되도록 기술이전을 무조건 성사시켜야 한다.
정부는 낮은 자세로 협상을 벌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한두 푼도 아니고 천문학적인 혈세가 투입되는 데다 북한군의 오판을 막고 우리 영공을 지키기 위한 중차대한 사업이기 때문에 최대한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판을 깰 수도 있다는 배수진을 치고 가격과 기술이전 협상에 임하기 바란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