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지적인 방랑의 연보… 철학자 박이문과의 대화
입력 2013-12-06 01:38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정수복/알마
철학자 박이문(83)을 흔히 지적인 방랑자라고 지칭하는 건 그가 일찍이 삶과 우주의 궁극적 의미를 찾아서 서울과 파리, 로스앤젤레스와 보스턴의 하늘 밑에 살다가 포항공대를 거쳐 지금은 일산 문촌마을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방랑하는 그의 곁에는 늘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 있었다. 1965년엔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자크 데리다의 강의를 들으며 ‘말라르메의 시에 나타난 이데(사상)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쓴 박사학위가 통과된 데 이어 미국으로 건너가 레슬레어공대에서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1967년엔 프랑스 최고수준의 잡지 ‘신프랑스평론’에 자전적 산문 ‘지적 방랑을 위한 출발’이라는 원고가 실렸다. 긴 방랑의 세월과 100권에 육박하는 철학책, 시집, 수필집, 자서전, 칼럼집을 뒤로 하고 일산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는 그를 찾아가 인터뷰한 이는 사회학자 정수복이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내 속에서 참을 수 없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어서 그 글을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에 장 그르니에에게 보냈어요. 카뮈의 스승이었던 장 그르니에가 당시 ‘신프랑스평론’ 편집을 맡고 있었는데 소르본에서 그가 하는 미학 강의를 들으면서 그 선생을 조금 알게 되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미국에서 철학공부를 하던 중 연락이 왔어요. 내가 보낸 글에 감명을 받았다며 원고를 실어도 좋겠다고 하더군요.”
1960년대면 한국이 정치적으로 혼란하고 경제적으로 가난해 파리유학생들이 프랑스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시절이다. 산문 ‘지적 방랑을 위한 출발’엔 이런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열정이 묻어난다. “나는 계속 살고, 걷고, 숨쉬기 위해 다른 어떤 수단도 없다. 그 연약하지만 빛나고 강인한 촛불 이외에는 아무런 자원이 없다. 나는 다시 떠나야 한다.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지적인 방랑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정수복이 묻고 박이문이 대답한 이야기들은 오롯이 지적인 방랑의 연보라고 할 수 있다. 충청도 아산에서 태어난 그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이어진 사회변동의 기본 줄기를 직접 체험한 세대에 속한다. 마을에서 시작한 그의 삶은 이제 세계가 하나의 단위가 되어버린 세계화 시대에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 가치와 문명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