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참된 대화’를 나누는 창조적인 순간 나는 치유 받고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

입력 2013-12-06 01:48 수정 2013-12-05 14:37


인간의 가면과 진실/폴 투르니에/문예출판사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이 보는 내 겉모습과 그 뒤에 가려져있는 내 모습 중 어느 것이 진짜일까. 과연 나는 어떤 순간, 나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나. 스위스 출신의 의사 폴 투르니에는 20년 넘게 이 질문의 답을 찾아 헤맸다. 이 책은 그가 정신 상담 의사로서 만난 환자들의 사례를 토대로 끊임없이 탐구해 얻은 결과를 기록한 책이다.

그는 인간을 ‘겉모습(페르소나즈)’와 ‘참된 인격(페르손)’을 지닌 이중적인 존재로 봤다. 겉모습이란 흔히 우리가 남들에게 보여주고자 의식적으로 또는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만들어낸 모습이다. 반면 참된 인격은 다른 사람이나 신(하나님)과의 참된 내면의 대화를 통해 만날 수 있다.

가령 의사를 만나러 온 환자는 자신의 말을 진지하고 성의있게 들어주는 의사 앞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참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애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어느 순간 환자는 자신의 참모습을 스스로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격은 잠재적인 것이다. 인격은 끊임없이 용솟음쳐 나오는 생명의 흐름이고, 생명이 새로이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신이나 다른 사람과 참된 대화를 나누는 창조적인 순간에 나는 이중의 확신을 갖는다. 즉 ‘나를 발견했다’는 확신과 ‘나는 변했다’고 하는 확신을 동시에 갖는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르게 된다.”(295∼296쪽)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상처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았던 투르니에는 30대에 이르러 아내와 대화를 하던 중 그 상처를 모두 표출한 뒤 치유받은 개인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가장 괴로운 기억, 가장 엄한 후회, 가장 내면적인 신념을 비밀에 부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행위나 인간관계를 필연적으로 유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유보는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는 것이라서 인간적인 접촉이 피어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백을 통해 과거의 중압에서 해방된 자 역시 해방된 과거에 대해 아무 말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즉 이 사람과 접촉하면 누구라도 더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는 것이다(198∼199쪽).”

그는 곧은 신앙을 토대로 이러한 인간의 문제와 이를 치유하는 과정을 하나님과의 관계로까지 확장시킨 ‘인간의학’의 창시자다. 이를 통해 현대 심리학과 기독교를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참된 해방은 생명이 용솟음쳐 나오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달려 있다. 우리는 신이나 다른 사람과 인격적으로 접촉하는 쪽으로 의지를 돌려야 한다. 이런 접촉을 통해서만 생명이 용솟음치고 인격이 나타난다. 그때 마음 속 깊은 곳의 문제를 깨닫게 되고, ‘정신’의 입김에 의해 자동 작용의 모든 먼지도 날아가 버릴 것이다(284쪽).”

문예출판사는 1979년 출간됐다 절판됐던 이 책이 힐링과 진정한 자유를 간절히 원하는 지금 현대인들에게도 필요하다고 판단해 다시 펴냈다고 한다. 비록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삶의 본질을 찾아 앞서 떠났던 이들의 여정이 지금도 유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0월에 내놓은 버트런드 러셀의 에세이 모음집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역시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특별한 홍보나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꾸준히 나가고 있다.

또 1986년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작으로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금이라도 소개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미셸 오스트의 ‘밤의 노예’ 또한 새로 펴냈다고 한다. 출판사 관계자는 “지난 47년간 출판사를 운영해온 덕분에 타사들에 비해 과거에 출판한 좋은 책 목록을 보유하게 됐다”며 “지금 이 시대에도 통할 수 있는 작품들을 되살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