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권력과 상업화·시민운동… 정치사회학 렌즈로 본 과학

입력 2013-12-06 01:28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스콧 프리켈·켈리 무어 엮음/갈무리

20세기 최첨단 과학 기술과 지식은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다양한 형태로 스며들고 있다. 자연스레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주요 이슈 중 상당수는 과학 기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당장 경남 밀양시에 고압 송전선 및 송전탑 건설 문제로 시민들과 한국전력이 빚는 갈등만 봐도 그렇다. 논란의 중심에는 ‘고압선의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한가’라는 과학적인 논쟁거리가 있다.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들 중 일부가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숨진 일은 또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을 줬던가. 전문가들이 상당한 시간을 들여 실시한 역학조사 결과,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화학물질의 독성 성분이 문제였음이 드러났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과연 전문 지식이 부족한 일반 시민이나 활동가들의 주장을 믿어도 되는 걸까. 아니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전문 지식 및 기술과 관련된 사안이니 전문가 중 누군가가 나설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기업은 자본으로, 정부는 규제로 과학연구집단과 과학기술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즉답까진 아니더라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이다.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 또는 ‘신과학정치사회학(The New Political Sociology of Science)’으로 묶을 수 있는 미국 학자들의 다양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학자들은 저마다 과학이 규제로 대표되는 국가와 어떤 식으로 상호 작용하는지, 시민사회운동과는 어떻게 협력하고 발전해왔는지, 과학 기술이 기업의 자본과 만나면서 어떻게 대학의 연구 풍토에 영향을 주었는지 등을 196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분석한다.

1부에서는 과학 기술의 상업화가 우리 사회, 특히 과학을 연구하는 대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제이슨 오웬-스미스 교수는 ‘상업적 뒤얽힘-전유되는 과학과 오늘날의 대학’을 통해 미국의 명문 대학들이 최첨단 과학 기술 연구로 얻은 경제적 이득을 유지하기 위해 변질된 모습을 폭로한다.

미국 보스턴 대학은 소속 교수가 설립했던 생명공학기업 ‘세라젠’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이득을 보자 무리한 투자를 했다 대학 측에 엄청난 손실을 입혔다. 컬럼비아대학은 유전자 조각을 세포에 삽입시키는 연구 결과를 이용해 개발하는 모든 약품의 판매금액 중 1%를 사용료로 받는 포괄 특허를 획득했다. 이 블록버스터급 특허는 10년간 2억8000만 달러의 특허료 수입을 안겼고, 특허 시효 소멸을 앞두고 대학은 특허권 연장을 시도한다. 하지만 언론의 비판과 잇따른 소송에 휘말려 실패로 돌아갔다. 미국의 명문 대학들이 학내 연구 성과를 통해 획득한 특허권의 연장, 방어 등의 모습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 등 어디에서도 곧 현실화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힌다.

2부에서는 시민들이 과학의 영역에 뛰어들고, 과학자들이 그들과 어떻게 상승효과를 이뤄낼 수 있는지를 과학과 사회 운동이란 주제로 살펴보고 있다. 워싱턴주립대 사회학과 스콧 프리켈 부교수는 미국의 ‘환경성 돌연변이 유발원 학회’의 활동을 소개한다. 1940년대부터 유전학자들은 값싸고 강력한 화학물질을 이용해 생명체에 특정한 유형의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30년간 각각의 대학 실험실에서는 유전적으로 위험한 화합물의 목록을 늘려가며 실험을 했지만 아무도 이것이 일반인 건강, 즉 공중보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았다. 1969년 연방정부가 합성 환경 화학물질이 생명과 생태에 미치는 영향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국가환경정책법’의 테두리로 모아 제정하면서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제임스 F. 크로우 위스콘신대 인구유전학 교수 등 일부 학자들은 정부의 규제 방침에 일부 해로운 유전적 연구 결과 내용이 빠져있음을 인식하고 ‘환경성 돌연변이 유발원 학회’라는 새로운 단체를 결성한다. 이후 시민들이 이들과 합류하고 계속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환경성 돌연변이 유발문제는 이후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될 수 있었다.

마지막 장은 과학과 규제 국가란 주제를 다룬다. 과학자 사회와 대학, 정부가 어떻게 서로 얽혀 있고, 이 과정에서 어떤 과학기술이 어떻게 국가 아젠더가 되는지 등을 살핀다. 미국 사회의 특수성을 간과할 수 없다보니 우리 현실과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특히 학자들이 여러 개념과 연구 방식을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소개하고 있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도 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사회적 이용과 과학 기술 독점에 대한 다양한 견제 방식 등이 논의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과학뿐만 아니라 환경, 보건 의료, 군사 문제 등에 대해서도 언급돼 있어 이런 사안에 관심 많은 이들이라면 시간을 들여서라도 읽어볼만하다. 김동광·김명진·김병윤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