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정한 (3) 절에서 찍은 사진 치워버린 아내에게 “이혼을…”

입력 2013-12-06 02:38


우리 집안은 본이 합천이씨(陜川李氏)로 전통적으로 불교를 믿어왔다. 합천에 해인사가 있는 것처럼 이 지역은 불교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어린 시절  기억나는 것은 부모님이 절에 시주하는 데 뭐든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밤새 굿을 하기도 했고, 밤늦게 제사를 지내는 것도 익숙해져 있었다.

반면 부산 구포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아내 가족들은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제사는 전혀 드리지 않았고 대신 추도예배를 드렸다. 그러니 명절에 장인 댁에 가면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았다. 추도예배가 아주 싱겁게 끝났다. 모이는 날짜와 시간도 편한대로 정하고, 추도예배 후 식사한 뒤 모두 그냥 헤어졌다.

아내도 우리 집에 와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대가족이 모여 대화를 하다 정확히 자정이 되면 제사를 지냈다. 여자들은 부엌에서 제사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제사 때 입는 옷도 옛날풍 모시옷에 고깔 같은 긴 모자를 쓰는 등 격식을 다 갖추었다.

결혼 전엔 전혀 부담이 없었던 제사가 결혼 후엔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다. 아내 때문이었다. 제삿날에 모처럼 큰맘 먹고 부산으로 내려가면 아내는 여러 형수들과 부엌에서 요리 만드는 일까진 함께했다. 그런데 정작 제사 때에는 부엌에서 아예 나오지 않았다. 신앙인으로 제사 절차를 함께할 수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던 것이다.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여겼다.

신혼 때는 종교가 달라도 서로 잘 이해하면 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했고 서로 인정을 해주기로 했던 터였다. 연예시절 식사 때마다 아내가 고개 숙여 기도했지만 그 모습을 불편해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결혼한 후 종교문제는 아주 심각했다.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가 결부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따라서 명절 때나 제삿날에는 서서히 가족 친지들과 교분이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나 혼자만 제사에 참석하게 되는 일이 잦아졌다. 따라서 친지들은 예수 믿는 아내를 거침없이 공격했다. 나는 집 벽에 고등학교 선배 정치인과 등산을 하며 절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자랑스레 걸어 놓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곳에 다른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니 내가 산에서 찍은 사진은 어디에 있어요?”

그런데 아내는 아주 점잖게 대답했다.

“미안한데요. 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라 제가 버렸어요.”

그러면서 오히려 전혀 예상치 않던 말을 꺼냈다.

“여보 이제 저와 함께 교회에 나가요. 부부가 신앙이 같아야지요. 저도 기다릴 만큼 기다렸고 당신을 위해 기도도 많이 했어요. 우리 함께 예수 믿어요. 나머진 제가 더 잘할게요.”

나는 너무나 어의가 없고 화가 나 이성을 잃고 말았다.

“당신 상의도 없이 사진을 버려도 돼. 정신 좀 차려.”

나는 아내의 뺨을 보기 좋게 한 대 때린 뒤 휭하니 밖으로 나와 버렸다. 막상 밖으로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다. 동네 포장마차에서 혼자 소주잔을 기울였다.

아내는 종교가 다르지만 삶은 나보다 훨씬 바르고 빈틈이 없었다. 아내로 부모로 며느리로 조금도 빠지는 부분이 없었고 직장생활까지 열심히 해 가계를 도와 온 아내였다. 이런 그녀에게 손찌검을 한 내가 매우 후회스러웠다. 종교전쟁은 이후에도 몇 번 더 벌어졌고 갈등하던 나는 결국 아내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당신이 불교로 개종하던지 아니면 이혼을 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요. 나도 이제 도저히 못 참겠소.”

내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아내는 딱 한 달만 여유를 달라고 했다. 한 달 후에 대답하겠다고 했다. 그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었다. 그 사이 나도 아내를 감동시켜 개종을 시킬 계획을 차분히 세웠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