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11. 역사와 종말 : 시간과 영원] ② 죽음

입력 2013-12-06 01:33


죽음은 삶을 정리하고 부활로 가는 과정 각자의 인격성 유지하고 하나님 앞에 서

수명 100세 시대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잘 죽는 것(well-dying)’에 대해 고민한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기독교인은 여기에 몇 가지 질문이 더해진다. 성경은 죽음을 뭐라고 말하는가.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다가올 엄격한 ‘현실’이다. 오늘은 죽음과 연관된 몇 개의 주제를 다루려 한다.

두 개의 얼굴

각 종교와 철학은 나름대로 죽음을 해석한다. 죽음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죽음’을 보자. 죽음은 두 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죽음의 첫 번째 모습은 달가운 것이 아니다. 죽음은 어둠의 힘이고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힘이다. 죽음 자체는 허무의 힘이고 심판이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것이다.

죽음은 미화되지 않는다. 삶과는 너무나 다른 이질적인 힘이다. 결코 아름답지 않다. 죽음은 육체를 가지고 사는 인간, 죄 속에 있는 인간 모두에게 강력한 지배력을 가진다. 죽음의 이런 모습은 신앙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이것이 죽음이 가지는 하나의 얼굴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죽음의 다른 모습을 본다. 신자에게는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다. 죽음은 최종적인 힘이 될 수 없다. 죽음 이후에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활이 있다. 부활이 있기에 죽음은 현재의 삶을 정리하고 부활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바울도 부활을 통해 죽음을 다시 보았고, 그에게 죽음은 더는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고전 15:53∼55).

즉 현재의 세계와 부활의 세계 사이에 죽음이 있다. 죽음은 부활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고 과정이다. 이것이 죽음의 다른 하나의 얼굴이다. 죽음이 가지는 두 번째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 신앙이다. 기독교인은 죽음의 두 얼굴을 함께 본다.

하나님의 지배

‘죽음 이후’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오해가 있다. 하나는 죽음 이후 인간이 멸절한다는 생각이다. 개신교 교인들 중에는 전적 죽음설이나 영혼멸절설을 받아들이고, 죽음 이후의 세계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세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과거에 개신교 정통주의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 이는 가톨릭의 연옥설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음 이후에 무(無)가 되거나 멸절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죽음 이후의 세계는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다는 생각이다. 성경에 사후의 세계를 어둡고 적막한 상태로 표현한 곳이 있다. 하지만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때 사후의 세계를 하나님과 단절된 별개의 세계로 봐서는 안 된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 혹은 사탄이 죽음 이후를 다스린다고 생각하면 다신론적인 사고가 된다. 성경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죽음과 그 이후의 세계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다. 죽음은 우리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끊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해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셨다(롬 14:9). 중간기나 중간상태가 하나님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고유한 인격성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해 많은 신학적 연구가 있었다. 최근에는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한 인간의 인식에 한계가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현재 3차원에서 산다. 우리는 오감(五感)을 통해 정보를 모으고, 시간과 공간 안에서 분석하고 인식한다. 그런데 사후의 세계는 3차원적인 세계가 아니다. 과거에 죽음 이후의 상태를 수면상태로 말하곤 했지만 ‘수면’이라는 말도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3차원적 개념이다.

예수님이 사두개인들과 부활에 대해 논쟁을 했다(마 22:23∼30). 사두개인이 일곱 형제와 차례로 결혼한 여인은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는지를 질문한다. 예수님은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간다고 대답한다. 사두개인은 죽음 이후에 대해서 3차원적인 사고에서 질문했고, 예수님은 죽음 이후의 세계는 우리의 사고를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해 호기심의 차원에서 몰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성경은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해 세부적인 묘사를 하지 않는다. 다만 성경은 인간의 현재와 죽음 이후 상태는 ‘비연속성’과 ‘연속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죽음 이후는 살았을 때와는 다른 차원으로 들어간다. 지금 우리가 가지는 고통, 기쁨, 슬픔과 같은 인식과 감각의 상태를 떠난다. 이런 면에서 죽음 이후의 상태는 현재 인간과 비연속선에 있다.

하지만 한 인간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동질성(identity)’은 없어지지 않고 유지된다. 동질성을 차안의 개념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에는 이를 ‘영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혼보다는 ‘인격성’이라는 용어가 낫다. 여기서 ‘인격성’은 영과 육을 포괄하며, 그 사람만이 가지는 고유한 정체성(identity)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겠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죽음 이후에 각 개인이 가지고 있던 누구와도 혼돈되지 않는 ‘그 자신’이라는 인격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인격성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에 대해 말씀할 때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대한 묘사에서 동사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을 쓰고 있다(마 22:32). 이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죽었으나 그들의 동질성을 나타내는 인격성은 살아서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살았을 때의 ‘그 사람’과 죽음 이후의 ‘존재’가 연속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여전히 하나님이 통치한다. 그러니 두려워 말라. 먼저 떠난 가족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말라.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이제 죽은 자는 그리스도에게 맡기자. 우리는 오늘을 산다. 현재에 충실하라. 이것이 주님의 뜻이다(마 8:22).

김동건 교수 <영남신대 조직신학, 저자연락은 페이스북 facebook.com/dkkim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