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없애고 줄이는 게 국정원 개혁인가

입력 2013-12-05 01:53

국민의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대타협 이뤄내라

여야가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 정치적 중립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특위’(국정원개혁특위) 설치에 합의함으로써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국정원 개혁 작업이 속도를 내게 됐다. 특별검사 도입을 주장하던 민주당이 한 발 양보하고, 한나라당이 국정원 개혁에 관한 민주당 주장을 대폭 받아들인 타협의 결과물이다. 합의 내용에 대해 일부 정치권과 국정원의 반발 기류가 없지 않지만 국회 정상화 물꼬를 트고, 국정원 개혁에 첫 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국정원 개혁 필요성에는 여야 모두 이견이 없다.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다만 어디까지 개혁할지 기대수준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문제는 기대수준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여야는 국회의 국정원 예산 통제권 강화, 공무원의 정치관여 행위 처벌 강화·공소시효 연장, 공무원의 부당한 정치관여 행위에 대한 직무집행 거부권 보장, 정보기관의 불법감청 처벌 강화와 국정원 직원의 정부기관 출입을 통한 부당한 정보활동 통제, 정당과 민간에 대한 부당한 정보수집행위 금지 등의 총론에는 합의했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분야가 한둘이 아니다.

우선 합의 내용 중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이 정부기관, 정당, 민간에 대한 정보수집 금지 대목이다. 비록 ‘부당한’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으나 국정원의 눈과 귀를 막으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민병두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은 4일 “국내 파트를 담당하는 국내 정보관의 기관 출입을 폐지한 게 아니라 업무 자체를 폐지시킨 것”이라고 단언했다. 대공수사권과 더불어 국정원의 가장 중요한 고유 업무가 정보 수집이다. 민주당 주장은 사실상 국정원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국정원 개혁은 국정원이 다시는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 마련에 초점을 둬야지 정보 수집 자체를 문제 삼는 건 본말이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것이다.

게다가 대공수사권 폐지 문제가 재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사권 폐지는 민주당 국정원 개혁안의 첫 번째다. 민주당은 이미 국정원을 통일해외정보원으로 축소해 해외 및 대북 정보만 담당토록 하고 국정원이 갖고 있는 수사권은 기존 정부기관에 이관하기로 당론을 정했다. 남과 북이 첨예하게 맞서 있는 상황에서 대공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정원의 수사권은 필수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다. 민주당이 개혁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대공수사권 이전 주장을 되풀이하지 않는 게 국민 눈높이에도 맞다.

잘못은 바로 잡아야 한다.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하면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는다. 그러나 잘못이 있다고 해서 권한과 임무를 축소하고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니다. 여야가 자기 주장만 고집해서는 국정원 개혁은 백년하청이다. 국정원이 본래 기능에 충실하고 국민의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반드시 여야가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