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가스의 역습… OPEC 전성시대 저물고 있다
입력 2013-12-05 03:33
전 세계 최대 원유 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패권이 저물고 있다. 중동 원유 최대 수입국인 미국이 대체 에너지 자원인 셰일가스 개발로 수입량을 점점 줄이고 있는 데다 감산(減産)을 통한 유가 방어도 이란, 이라크 등의 반발로 녹록지 않아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현지시간) “OPEC이 딜레마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12개 OPEC 회원국은 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정례 각료회담에서 하루 3000만 배럴인 기존 생산량을 내년 상반기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하반기 이후에는 회원국들 간 생산 쿼터 조정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벌어져 전체 생산량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 원유 생산의 3분의 1을 담당하고 있는 OPEC은 수십년간 원유 생산량 조절을 통해 유가를 통제하며 패권을 유지해 왔다. 생산량을 줄여 유가 급등을 불러일으킨 ‘오일쇼크’ 등이 대표적 사례다. 전 세계가 석유 등 화석연료에 의존해 온 20세기에서나 가능한 얘기였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에너지 수급 구조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미국이 셰일가스 등 천연가스 개발에 몰두해 석유 의존도를 대폭 낮췄다. 셰일가스 직격탄에 OPEC의 원유 생산량은 이달 하루 평균 3000만 배럴 아래로 떨어졌다. 2년반 만에 최저치다. 그럼에도 OPEC은 최대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원유를 헐값에 팔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에너지 비중이 2010년 석유 32%, 천연가스 22%에서 2035년 각각 27%와 24%로 격차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반면 중동 및 OPEC 국가들은 ‘오일머니’로 무기 개발에만 열을 올렸다. 여전히 재정의 대부분을 원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경제는 유가가 최소 배럴당 100달러선이 유지돼야 돌아가는 구조다. 지난 3년간 시리아 내전, 이란 제재 등으로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을 배럴당 100달러 위에서 붙잡아놨지만 조만간 100달러 밑으로 떨어질 것이란 게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에너지 산업구조 변화도 OPEC의 위기요인이지만 OPEC 내부 단합도 예전만 못하다고 FT는 지적했다. 당장 이란이 핵협상 타결로 원유시장 복귀를 준비하고 있어 OPEC 회원국 간 생산량 쿼터를 놓고 신경전이 불가피하다.
비잔 남다르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2일 기자회견에서 “국제사회의 제재가 풀리면 6개월 안에 원유 생산을 하루 400만 배럴로 늘릴 것”이라며 “OPEC이 여지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OPEC 전체 원유 생산량을 증산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란이 생산량을 늘리면 다른 나라가 감산을 해야 하지만 수입이 줄어드는 일을 달가워할 리 없다. 더욱이 이라크는 지난해와 유사한 수준으로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표명, OPEC에 부담을 안겼다. AP통신은 OPEC 양대 맞수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이란의 증산을 위해선 OPEC 맏형인 사우디의 감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FT는 “셰일가스 혁명과 내부 분열이 원유 카르텔을 해체시키고 있다”며 “OPEC 시대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