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진 빛으로 거듭난 ‘목포의 눈물’
입력 2013-12-05 01:31
야간조명이 화려한 ‘빛의 도시’ 목포
일등바위와 이등바위를 비롯한 유달산 기암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다. 관운각(觀雲閣)이 일등바위 아래에서 목포 앞바다의 운해를 굽어보고, 대학루(待鶴樓)로 추정되는 정자는 삼학도에서 날아오를 학을 기다리고 있다. 고하도 앞 바다에는 간결한 선으로 그린 황포돛배 네 척이 한가롭게 떠있고, 한지의 넉넉한 여백을 덧칠한 희미한 붓자국이 파도처럼 너울거린다.
조선 헌종 때의 궁중화가인 소치 허련(1808~1893)의 손자로 한국 남종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남농 허건(1907~1987)이 1981년에 그린 ‘유달기암(儒達奇巖)’의 모습이다. 목포팔경 중 제1경인 ‘유산기암(儒山奇巖)’을 화폭으로 옮긴 유달기암은 유달산의 병풍 같은 기암을 말한다. ‘호남의 개골’로도 불리는 유달산은 ‘빗자루 몽둥이만 들어도 명필이 나온다’는 남농이 유달산 자락에 살면서 사생을 바탕으로 한 실경을 화폭에 담아 ‘남농 산수’라는 독자적인 산수화 경지를 구축한 무대이기도 하다.
국민가요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유달산(228m)은 노령산맥의 마지막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의 땅 끝 산이다. 유달산(儒達山)의 본래 이름은 놋쇠 유(鍮)자를 쓴 유달산(鍮達山). 일등바위와 이등바위 등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바위가 아침햇살에 젖어 놋쇠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달산 유람의 들머리는 노적봉.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적은 숫자의 군사로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이 봉우리를 이엉으로 덮어 군량미를 쌓아놓은 노적처럼 보이게 했다고 해서 노적봉으로 불린다. 원래 유달산과 노적봉은 한 줄기였으나 일제가 목포의 기를 끊기 위해 도로를 내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둘로 나뉘어져 있다. 노적봉의 봉우리가 이순신 장군이 호령하는 듯한 모습을 연상한다고 해서 최근 ‘큰바위 얼굴’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노적봉 남쪽에는 에로틱한 모습의 나무 한 그루가 부끄러운 듯 숲 속에서 나신을 드러내고 있다. 수령 50∼60년의 팽나무에서 뻗어 내린 뿌리가 다시 하늘을 향해 자라면서 여인이 두 다리를 들고 누워있는 기묘한 형상을 연출하고 있다. 목포 사람들은 이 나무에 ‘다산목’이라는 점잖은 이름을 붙였다.
유달산에는 달선각을 비롯해 모두 5개의 정자가 다도해를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다. 동백나무 군락지를 지나 첫 번째로 만나는 대학루는 삼학도로 변한 세 처녀의 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정자. 대학루에 오르면 육지로 변했다가 다시 섬이 된 삼학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난영의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는 유달산 중턱 거대한 화강암 반석에 자리하고 있다. 노랫말에 나오는 삼학도·영산강·노적봉이 한 눈에 보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 윤심덕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진 극작가 김우진, 그리고 이난영이 이옥순이라는 이름으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녔다는 북교초등학교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이곳에서 정상인 일등바위까지는 20분 거리로 고래바위·종바위·투구바위 등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도시와 바다에 둘러싸인 유달산은 보는 위치와 시각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연출한다. ‘목포의 딸’로 불리는 이난영의 수목장(樹木葬)이 위치한 대삼학도의 난영공원에서 보는 유달산은 노래비에 있는 버튼을 누를 때마다 흘러나오는 ‘목포의 눈물’과 ‘목포는 항구다’의 애잔한 목소리 때문인지 서럽도록 정겹게 보인다.
목포 앞바다에 한 마리 용처럼 길게 누워있는 고하도의 전망대에서 보는 유달산은 이순신의 전함처럼 위엄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육지면(면화) 재배지인 고하도는 면적 1.78㎢의 조그만 섬이지만 해안선 길이가 10.7㎞에 이를 정도로 길쭉해 목포 앞바다를 파도로부터 막아주는 역할을 하다.
고하도는 목포의 섬이지만 영암의 대불산단과 다리로 연결돼 목포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섬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에 북항과 고하도를 연결하는 총연장 4129m의 목포대교가 완공되면서 시내버스가 다니는 육지로 변했다. 이충무공유적지 입구에서 용머리까지 조성된 용오름길(편도 2.8㎞)은 목포 시가지와 다도해를 조망하면서 걷는 조붓한 숲길. 솔향 그윽한 해발 77m 높이의 전망대에 서면 유달기암에 그려진 나룻배 대신 거대한 화물선과 여객선이 석양에 붉게 물든 유달산을 배경으로 속속 귀항하는 용당귀범(龍塘歸帆)을 연출한다. 목포팔경 중 제8경인 용당귀범은 바다에서 고하도 용머리를 돌아 목포항으로 돌아오는 황포돛배의 풍경.
목포의 야경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은 유달산 최고봉인 일등바위. 다도해의 섬 사이로 해가 가라앉고 남색 구름 사이로 오렌지색 황혼이 짙어지면 용처럼 길쭉하게 생긴 고하도가 경관조명을 밝힌다. 이어 목포대교와 유달산이 색색의 조명으로 화답을 하고, 목포 시가지와 삼학도 등이 불을 밝히면 목포 일대는 검은 도화지에 색색의 물감으로 그린 점묘화로 거듭난다.
목포의 야경은 평화광장 앞 바다에서 완성된다. 바다가 칠흑처럼 짙어지면 ‘목포 춤추는 바다분수’가 감미로운 선율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항구도시 목포와 삼학도를 상징하는 조형물과 수백 개의 노즐에서 쏘아 올려진 물줄기의 최대 높이는 70m. 레이저와 물줄기가 ‘젠틀맨’을 부르는 가수 싸이의 춤을 연출하고 나면 음악분수는 ‘목포의 눈물’을 반주삼아 황홀한 무대를 선보인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