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넘어 함께하는 우리로 (48)] 지자체 21% 하나마나한 보고서로 면피
입력 2013-12-05 01:35
성별영향 분석평가
지난달 8일 경기지역 YWCA협의회 주최로 ‘성별영향분석평가제도 운영 현황 모니터링 경기도 토론회’가 열렸다. 경기도 내 11개 기초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지자체의 법령, 계획, 사업에 대한 성별영향분석평가를 모니터링했다.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1개 시를 제외한 341건의 분석보고서를 작성의 질적 수준과 성평등한 내용으로 정책 제안이 이뤄졌는지 분석했다. 이번 경기지역 Y가 진행한 성별영향분석평가 모니터링 사업은 성불평등 요소를 찾아내고 개선 정책을 발굴해 성평등적 정책을 이뤄내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하지만 지자체의 사업 담당자들이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하면서 성평등을 위한 실질적 사업 내용에 대한 충분한 파악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성별영향분석평가제도는 법령, 계획, 사업 등 정부의 주요 정책을 수립 시행하는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의 특성과 사회 경제적 격차 등의 요인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해 정부 정책이 실질적인 양성평등의 실현에 기여하게 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의 일환으로 성별영향분석평가, 성인지예산, 성인지통계를 제도화했고 2002년 ‘여성발전기본법’을 개정하면서 근거 규정을 마련했다. 2004년부터 성별영향분석평가가 시범 실시됐고 2011년 9월에는 성별영향분석평가법이 제정돼 2012년 3월부터 각 지자체는 지자체의 법령이나 계획, 사업 등에 대해 성별영향분석평가를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따라서 지자체 담당공무원들은 사업을 시행한 후 성별영향분석평가 체크리스트와 보고서를 작성해 정책에 반영하고, 그 내용을 여성가족부 장관을 거쳐 국회에 제출한다.
이번 보고서 작성의 질적 수준은 분석 항목마다 해당되는 내용을 작성했는지를 살펴본 것인데, 작성률이 21%에서 72%까지 기초 지자체마다 편차가 컸다. 대상 사업명과 담당자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작성하지 않은 보고서도 상당히 있어 과제 수 채우기에 급급한 면을 볼 수 있었다. 반면 통계 자료와 그래프, 다양한 기초조사를 통해 분석보고서를 성실하게 작성한 사례도 많았다. 담당 공무원들은 분석평가서를 작성한 뒤 개선 과제를 도출하는데, 각 회원 YWCA는 개선과제가 성인지 정책 방향에 부합한지를 모니터링했다.
예를 들어 A시의 ‘주민자치대학 운영’ 사업은 수료생중 주민자치위원 신규 위촉시 여성 수료자를 우대한다는 항목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야간시간대에 개설되어 있어 여성의 참여가 저조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사회문화적 차이 분석이 배제됐기 때문이다. 담당공무원은 해당 사업의 분석평가서를 작성하고 젊은 여성 및 주부참여를 위해 야간운영시간대를 주간오전으로 조정하거나 추가 개설을 과제로 도출했다. 이는 바람직한 성별영향분석평가의 예다.
지역YWCA에서 성평등 방향으로 개선된 과제의 건수는 341건 중 180건이었다. 나머지는 성평등과 무관한 내용을 제안했거나 개선 사항을 아예 공란으로 비워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성평등에 반하는 결론이거나 의문시되는 결론도 상당수였다. 5대 5 성별로 균등하게 맞추는 것이 성평등이라 생각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개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또 성별고정관념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쪽으로 개선 방향을 제안한 보고서들도 있었다. 어린이 및 성인대상 평생학습 프로그램에 있어 성별로 다른 요구도를 파악, 남녀의 성향에 맞는 프로그램을 차별화하겠다는 결론도 많았다. 이는 여성은 정적이고, 남성은 동적이라는 성별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농업인 실용화교육사업에 여성 농업인을 위해 농업과는 상관없는 요리교육 등을 개설하겠다는 식이다.
구체적이고 성실한 분석으로 성평등 개선 과제를 도출한 사례도 많았다. 숲 가꾸기 사업 등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지 않았던 분야에서 여성 인력이 가능한 업무를 세분화해 여성 채용을 늘리겠다거나, 가사 및 양육부담을 안고 있는 여성 농업인의 정보화교육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마을순회교육이나 교통편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박동순(안양 YWCA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