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史를 바꾼 한국교회史 20장면] (20·끝) 선진화와 한국교회 부흥

입력 2013-12-05 01:35


살만한 나라로 이끈 한국교회… 사명은 끝나지 않았다

“교회가 사회 개량 문제에 비교적 냉담하여 오다가 근년에 각국에서 성행하는 산업과 상업과 정치 운동이 기독교인의 원칙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지도자들의 사용하는 방법 중에 기독교인의 원칙과 반대되는 것이 많음을 인정하게 되었다…이러한 자각은 교회를 각성시켜 각국의 사회상태를 참말 그리스도교주의로 개량케 하려고 더욱더 노력하게 된 것이다.”

캐나다 선교사 맥도널드가 1925년 12월 9일자 기독신보에 쓴 글이다. 그는 사회 여러 분야의 문제 개선에 기독교인이 나서길 촉구했다.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서구 선교사의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는 50년대 후반부터 사업장에 복음을 전하는 산업 전도에 나섰다.

산업 전도는 단순히 회사 간부와 노동자를 전도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일터로 파견된 목회자들은 고용주, 고용인 모두가 일터에서 신앙인답게 생활토록 장려했다. 이는 경영인에게 ‘하나님께 위탁받은 청지기’란 의식을, 노동자에겐 ‘노동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자 이웃을 향한 사랑의 행위이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신성한 생활수단’이란 가치관을 심어줬다.

◇경제 발전에 영향 미친 기독교=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을 받아 서구 자본주의가 발흥했듯 한국 경제성장 초기 기독교도 경제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장로교회가 주도한 산업 전도가 대표적 예다.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던 이들은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온 월남 피란민이다. 평양과 서북지방에서 기독교 교육을 받은 교인들이 상당수였던 이들은 서울, 인천, 부산 등 대도시에 정착했다. 주로 상업과 제조업에 종사했던 이들은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월남 피란민들은 대광고, 숭실대학교 등의 기독교계 학교를 지었다.

60∼70년대 산업화 시기엔 노동착취나 인권침해가 빈번히 일어났다. 그러나 기독교인 공장주는 정직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노동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신앙대로 사는 데 큰 관심을 보였다. 이들의 요구를 파악한 월남 피란민 출신 목회자들은 교단에 공장과 기업의 복음화를 위한 ‘산업 전도’를 펼쳐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57년 한국 장로교 총회 전도부 안에 ‘예장 산업전도위원회’가 조직된 것이 그 결과다.

장로교 목회자들은 각 도시에 ‘산업전도위원회’를 세워 경영자에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예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일깨우는 데 주력했다. 또 공장 내 기도회·예배모임, 취미·문화모임을 만들거나 무료 교양 강좌·진료 봉사를 다니며 노동자에게 복음을 전했다.

◇교회 부흥 이후 해외선교·구호활동·통일운동에 기여=초기 기독교인 자본가와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산업 전도는 교회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도시선교 활동에 탄력을 받은 6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경제부흥과 발맞춰 성장했다. 영혼과 건강, 물질의 축복을 설파한 절대긍정 및 희망신학은 경제성장시기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에게 큰 힘이 됐다. 반면 이로 인해 일부 신학자에게 한국교회가 기복신앙에만 열광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폭발적 성장을 이룩한 한국교회는 풍부한 인력과 자금을 바탕으로 국내외에서 다양한 선교활동을 펼쳤다. 민주화와 국내 선교에 관심을 두던 한국교회는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해외선교로 눈을 돌려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교 대국이 됐다.

한국교회는 해외선교에 이어 북한을 돕는 일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94년 기독NGO인 월드비전은 북한 농업을 지원하고 국수공장을 짓는 등 대북사업을 시작했다. 구호단체의 활발한 대북지원 활동에 힘입어 개교회도 의약품과 식량 등을 전달하며 나눔 활동에 적극 동참했다. 또 북한이탈주민의 학업과 취업 지원, 상담 등의 활동을 펼쳐 이들이 국내 정착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이외에도 한국교회는 2000년대 이후에도 국가와 세계의 위기상황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당시엔 개교회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연합단체인 ‘한국교회희망봉사단’을 꾸려 대사회봉사에 진력했다.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2010년 아이티 지진 때도 한국교회와 기독NGO는 누구보다 재해현장에 앞장섰다. 최근 슈퍼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에 덮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교회, 끝나지 않은 사명=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의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 대한민국 건국 등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개항 이후 한반도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의료·교육활동은 한국 근대사회의 초석을 마련했다. 또 한국교회는 암울했던 민족의 아픔을 돌봤다. 신앙인들은 3·1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궁벽한 농촌의 계몽에 힘썼다. 차별받는 노동자와 아픔을 함께했으며 환경보호에도 앞장섰다. 근대 문학과 스포츠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

그간 교회는 ‘하나님의 공의’를 외치며 한국 사회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근대사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해서 한국교회의 소명이 완수된 건 아니다. 교회가 사회를 바꾸는 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장신대 임희국 교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교회는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만 한다”며 “이것만이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역사적 유산을 계승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라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