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사람 사는 성탄
입력 2013-12-05 01:33
마가복음 10장 17∼31절
마가복음 10장의 청년 이야기는 성탄 분위기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멀어도 너무 멀지요. 그런데도 이 이야기가 이번 성탄에 유독 끌립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이 청년이 목숨을 지키는 것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살려고 하는 의지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분명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번 성탄에도 우리 모두는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하늘의 축복을 기대할 것입니다. 하늘의 가장 큰 축복은 생명, 즉 목숨이 아니었던가요! 오늘 마가복음 10장의 청년도 목숨, 그것도 영원히 살 수 있는 목숨을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청년은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묻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은 십계명의 일부를 말하며 그러한 율법을 지킬 것을 요청합니다. 청년은 그 율법들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청년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목숨을 영원히 지키려는 청년이었기에 그가 예수님의 말에 적절하게 순종할 줄 알았는데, 그 청년은 예상과 다르게 반응합니다.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22절)
청년의 풍족함이 어쩌면 이 시대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는 성탄의 분위기에 취해서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완전하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풍족함이 최고의 가치가 된 사회 안에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처럼 이 청년 역시 이 풍족함을 지키면 목숨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외형적 풍족함은 자신의 영적이고 율법적인 것에도 풍족함을 느끼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의 풍족함이 그의 눈을 가리고 마음을 닫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싶네요.
자기의 풍족함은 사람의 마음을 가두고 원하는 것만을 보게 하기에, 부자 청년은 가난한 자의 삶을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풍족함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풍족함을 버리는 것이 목숨을 지키는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은 그 청년에게 충격 자체입니다. 자기의 풍족함이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것일까요. 청년의 문제는 풍족함 자체가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주위에 있는 가난한 자의 삶을 보지 못한 것이었죠.
혹 이번 성탄에 행사 자체의 풍족함과 분위기의 풍족함으로 이 청년처럼 우리의 눈과 마음이 닫혀서 내가 보기 원하는 것만 보게 된다면 우리의 풍족함이 결국 우리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죽일 것입니다. 성탄은 사람을 살리는 날이기에 이 성탄에 주위의 어둡고 그늘진 곳, 소외되고 버려진 곳, 그리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위해 내게 있는 것을 나눌 수 있다면 사람이 살고 사회가 살아날 것입니다. 자기의 풍족함이 사회의 풍족함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개인도 사회도 모두가 풍족해야 하고, 사람이 살고 사회가 움직여야 성탄의 진정성이 나타날 것입니다. 땅에 평화와 하늘엔 영광이 이루질 것입니다!
김규한 사관 (구세군본부 홍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