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꽉 막힌 정치에 여론도 ‘非與非野’

입력 2013-12-04 02:34


최근 국민 여론은 여야 어느 한쪽에도 힘을 실어주지 않고 있다. 좀처럼 타협하지 못하고 강경 대치 국면을 이어가는 정치권 자체에 대한 국민 시선은 차갑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특검 도입 등을 놓고 치열한 대국민 여론전을 펼치고 있으나 누구도 압도적인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여야 지지율마저 양분돼 있다. 정치권이 여론을 주도하지 못해 여론이 답보하고, 정치 불신만 키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각 언론사와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최근 2주간 실시한 조사를 살펴보면 답답한 정국 흐름이 그대로 나타난다. 연말 국회의 최대 이슈인 특검 도입의 경우 찬성이 50%를 넘지만 반대도 35% 수준이다.

CBS가 지난 1일 전국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유·무선 전화 면접조사에서 찬성 55.8%, 반대 32.5%였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46%P). 앞서 지난달 22일 전국 700명을 상대로 실시된 JTBC 조사에서는 찬성 51.8%, 반대 34.5%였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7%P). 과반수 여론은 특검 도입을 찬성하고 있어 민주당이 명분을 쥐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확실히 움직일 만큼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떠한 사안이든 특검과 국정조사를 하자고 하면 찬성 여론이 대체로 많다”며 “예를 들어 3명 중 2명꼴로 찬성하면 민주당의 특검 요구가 탄력을 받을 수 있는데 그런 상황까지는 못 간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지지층을 제외한 부동층이 특검 요구에 동참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민주당의 리더십 부족, 새 정권 초기 기대감, 대선 패배 및 야권 내부 책임론 공방, ‘안철수 신당’ 출현 등이 복합적으로 민심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이 여론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것도 정국이 꼬인 이유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5∼28일 전국 12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당 지지율 조사에서는 각각 새누리당 35%, 안철수 신당 26%, 민주당 11%로 나타났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2.8%P). 신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을 합치면 37%로 오히려 야권이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다. 현 정국이 지난해 대선 틀 안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누리당의 대국민 메시지에 한계점이 명확한 셈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우월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다 보니 오히려 “조금만 더 하면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오류에 빠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희웅 민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조금만 더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강 대 강’으로 가고 있다”며 “양측이 밀리지 않고 있다고 여론을 해석하면서 교착 상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야권과 샅바싸움을 하는 사이 정권 운영에 필수적인 법안과 예산 처리에 문제를 겪고 있고, 민주당은 지지율을 안철수 신당에 빼앗기는 위험에 장기간 노출되고 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