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中 IPO 입찰 싹쓸이… 그 배후엔 태자당
입력 2013-12-04 14:59 수정 2013-12-04 17:50
월가-태자당 검은 유착 20년
지난 8월17일 세계 자본시장의 핵심인 미국 뉴욕 월가. 이날 아침 월가는 발칵 뒤집어졌다. 금융계의 저승사자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법무부, 연방수사국(FBI) 등이 미 최대 투자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중국인 직원 채용 의혹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에 나섰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기 때문이다.
신문은 2010년 JP모건이 중국 광다그룹 탕솽닝 회장의 아들 탕샤오닝을 채용한 뒤 이듬해 광다그룹 산하 광다은행의 상장자문사로 선정되는 등 중요한 계약을 싹쓸이 했다고 전했다. 탕 회장은 중국의 은행 규제를 총괄했던 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 부주석을 지낸 인물이었다. 은행의 목숨 줄을 쥔 ‘슈퍼 갑’이었던 것이다.
신문은 또 JP모건 홍콩사무소에서 일하던 장시시 역시 특혜 채용 의혹이 있다고 전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장수광 전 중국 철도부 부총공정사였다. 그녀가 채용된 시기는 마침 국영철도기업인 중국중철(中國中鐵)의 기업공개(IPO) 자문사 선택과 맞물렸다. 중국중철은 대표적 철도건설 업체로 관련 사업을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는 대형 건설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탐욕의 ‘맨 얼굴’을 보인 월가와 중국의 최고위층 지도부 자제(태자당) 사이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외국 관리에 대한 뇌물공여를 문제 삼는 해외부패방지법(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혐의가 적용될 경우 법인과 개인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벌금과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데도 대형 투자은행은 중국인 직원 채용에 집착한 것일까.
월가와 태자당의 20여년 공생
월가와 태자당과의 유착은 최근 일이 아니다. 기원은 1990년대까지 올라간다. 미국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는 당시 홍콩지사 개설을 준비 중이었다. 사무실 개설 책임을 맡은 중국계인 도널드 탕은 뉴욕의 키더스 피바디 증권사에 근무하던 런커잉(任克英·마거릿 런)을 주시하고 있었다.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그녀는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풋내기 금융인이었다.
그런데 도널드 탕이 눈여겨 본 것은 그녀의 시아버지가 바로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시위대에 동정적인 입장을 보이다 실각한 자오쯔양 전 총서기였던 것. 그녀의 아버지 역시 런중이 전 광둥성 서기였다. 오랜 설득 끝에 그녀를 홍콩 사무실로 데려왔다.
연봉 15만 달러에 불과하던 그녀는 초반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중국전신(中國電信)이 상하이와 선전 증시에서 20억 달러(약 2조1242억원)에 달하는 IPO를 할 당시 바로 베어스턴스가 주관사가 된 것.
국유기업을 상장할 때 어떤 투자은행이 주관사로 선정되느냐는 업계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일단 IPO주관사로 선정될 경우 상장으로 얻는 이익의 10%를 받는다. 여기에 증자와 인수합병, 새 사업진출과정에서 각종 자문 등을 통해 천문학적인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당시 분위기에 대해 회사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그녀를 도운 것은 가택연금 중이었던 자오 전 총리에 대한 연민과 존경이 담긴 것”이라고 보도했다.
런커잉 영입에 따른 베어스턴스의 성공은 시티그룹 같은 덩치가 큰 금융기관에는 충격이었다. 시티은행 고위관계자는 FT에 “우리는 계속 중국 관련 계약을 따내는데 실패했으며 그녀의 성공을 주목하고 있었다”면서 “중국 관리들은 사업을 자신의 친척에 몰아주는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마침내 2001년 시티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중국 증시에 IPO열풍이 불면서 아버지와 시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기까지 했다. 씨티그룹은 민생은행(民生銀行)을 비롯해 중국망통(中國網通), 중국인수(中國人壽) 등 IPO 주관 업무를 휩쓸었다. 규모만도 당시 사상 최대 규모인 35억 달러에 달했다. 시티그룹은 일약 하위권에서 2003년 투자은행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중국 금융은 런으로 통한다’라는 말이 생긴 것도 이때쯤이다.
2003년 중국생명 상장과정에서 미 증권당국에 허위 서류를 제출한 의혹으로 금융계를 떠났던 그녀는 이후 BNP파리바를 거쳐 2007년 메릴린치 중국담당 회장으로 화려하게 돌아오면서 금융여제의 복귀를 알렸다.
그녀의 성공은 태자당은 물론 투자은행에도 자극제가 됐다. 경쟁자인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크레딧 스위스 등은 경쟁적으로 태자당을 끌어들였다. 원자바오 총리의 딸인 원루춘(溫如春·릴리 원)은 크레딧 스위스와 리먼 브라더스를 거쳤다. 주룽지 전 총리의 아들인 주윈라이(朱云來·레빈 주)는 모건스탠리와 합작으로 운영되던 중국국제금융공사(CICC) 회장이 됐다.
메릴린치는 2006년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사위인 펑사오둥을 영입했다. 골드만삭스는 왕치산 중앙기율위 서기의 인척인 홍닝을 영입한 뒤 2010년 농업은행의 홍콩·상하이 증시 IPO를 체결했다.
특혜 여부는 불분명
문제는 의심스런 채용 정황이 있지만 실제로 태자당 인사의 채용과 투자은행-국유기업 계약 사이에 특혜가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JP모건 채용의혹 수사에 참여 중인 한 인사는 FT에 “태자당의 배경이 매우 좋다. 예를 들어 그들은 미국의 톱 클래스 대학을 나왔고 매우 훈련도 잘 돼있다”며 “이들이 자신의 집안 배경 때문에 투자은행에 채용됐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장시시의 경우 명문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인재였다. 그는 “이들 때문에 은행이 계약을 따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털어놨다.
기업 측도 당국의 조사에 전적으로 협조하면서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관련자들이 모두 회사를 그만둔 상황에서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문제를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JP모건 관계자는 “채용된 인사들이 채용절차를 어긴 적도 없고 계약을 따내는데 필연적인 역할을 했다는 내용도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계 직원 채용을 놓고 조사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유명인사 자녀도 금융계에 진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딸인 첼시 클린턴도 자문회사인 맥킨지에서 일했다. 또 제약회사 화이자의 최고경영자였던 제프 킨들러의 아들 역시 모건스탠리에 적을 뒀다. 광고대행사 WPP의 최고경영자인 마틴 소렐의 세 아들도 모두 골드만삭스에서 업무를 봤다.
여기에 태자당을 채용하는 것이 꼭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HSBC는 태자당 채용을 고려했었다. 하지만 기업문화가 달라 이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사회 멤버는 “태자당을 채용해 뭔가 이득을 보려는 방식은 우리 문화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HSBC는 소매금융 분야 중국 1위의 신뢰도를 자랑하고 있다.
태자당을 이용한 기업 활동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장 후 강력한 반부패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용납될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2일 끝난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는 시장기능을 강화한 개혁개방을 강조했다. ‘관시’를 이용한 뒷거래는 힘들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예일대 경영학과 천즈웨이 교수는 “더 이상 태자당의 시대는 유지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