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만우] ‘납세 의인’이 나라 구한다

입력 2013-12-04 01:38


창세기 18장에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 출동한 하나님의 사자 셋과 아브라함 사이의 처절한 흥정이 등장한다. 백 명에서 시작해 깎고 또 깎아 열명의 의인(義人)만 있으면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그러나 열명의 의인도 없었던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나라 재정이 엉망이다. 박근혜정부 스스로 5년 내내 적자재정을 꾸릴 수밖에 없다는 견적서를 내놨다. 이런 난국에도 불구하고 재정자립도 최상의 서울특별시는 국가 예산을 더 내놓으라고 앞장서서 윽박지른다. 공기업 부채를 포함해 국가 부담으로 귀착될 빚이 10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기초연금 등 이미 지급을 약속한 각종 연금에서 발생될 대규모 적자까지 감안하면 끔찍한 수준이다.

외환위기 직후부터 쌓이기 시작한 나라 빚더미는 노무현·이명박정부로 넘어오면서 놀라운 속도로 불어났다. 초보적 분식 수법인 ‘공기업에 빚 떠넘기기’도 갈수록 심해졌다. 이명박정부 4대강과 보금자리주택 사업에 동원된 수자원공사와 토지주택공사(LH)의 부채 폭증은 그 속도나 규모면에서 기네스북 등재감이다.

공기업 부채도 국가부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칼럼만 쓰면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을 들먹이며 들러붙던 공직자 반론 칼럼은 박근혜정부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경제부총리가 공기업 사장을 집합시켜 ‘파티의 파장’을 선언하면서 부채 감축을 독려했다. 이제부터 공기업 사장뿐만 아니라 비상임이사를 비롯한 임직원 모두 눈을 부릅뜨고 경영 효율을 높이고 부채를 감축해야 한다. 재정 파탄을 막으려면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과 국민이 함께 나서서 국가예산을 아끼고 조세행정 효율을 높여야 한다.

경기침체와 맞물려 세금 걷기가 매우 어렵다. 국세청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대한 불만도 크다. 사실 세법에 따른 정당한 세금을 납부했다면 세무조사가 문제될 리 없다. 일부에서는 금괴와 금고가 동나고 고액권 지폐가 자취를 감췄다며 부작용을 부풀린다. 그러나 금값은 하락할 위험도 크고 금괴와 현금을 금고에 쌓아두면 이자수입이 날아간다. 현금거래에 대한 금융정보분석원(FIU) 감시가 계속 강화돼 감춰둔 현금을 나중에 몰래 사용하기도 힘들다. 법인세율을 올려 세수를 확보하자는 주장도 있다.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 재원을 고갈시키면 실업이 확산돼 복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더 어려워진다.

선진국에 비해 낮은 과세포착률을 끌어올려야 한다. 최근 LG경제연구원은 작년 지하경제 규모를 314조원으로 추정하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정부예산과 맞먹는 지하경제로 인해 세금 탈루가 엄청나다. 지하경제는 매출이나 수입금액을 누락시켜 부가가치세를 비롯한 각종 소비세를 포탈하고 소득금액을 줄여 법인세와 소득세도 탈세한다. 대형 백화점이나 종합병원 등 내부 통제가 정비된 조직보다는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자영업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국세청이 신용카드 사용 실적에서 소득을 역산하는 등 각종 조사 기법을 동원해 잡아내려 안달이다. 그러나 국민 스스로 납세의식을 높여 정직하게 납부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자영업자 중에서 세금을 빠짐없이 납부하겠다고 선언하는 ‘납세 의인’이 나타나야 한다. 종업원에게 모든 세금을 정당하게 납부하도록 공개적으로 지시하고 납품업체도 납세의무의 충실한 이행을 조건으로 선정하는 의로운 납세자가 수백명, 수천명 등장해야 한다.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이미 50년 전에 납세가 국민의 최우선적 의무임을 강조하면서 ‘세금을 정직하게 내야 한다는 신념’을 모든 임직원에게 심어줬다. ‘납세 의인’의 대의(大義)야말로 국가재정의 파탄을 막을 마지막 보루다.

이만우(고려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