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해저터널
입력 2013-12-04 01:37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대망’에는 공성(攻城)의 방법 가운데 하나로 지하터널을 뚫는 방식이 심심찮게 나온다. 잔꾀가 많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주 사용한다. 공격이 쉽지 않은 산성을 빼앗기 위해 은광 출신 광부를 동원해 땅을 깊이 파 들어가 적을 섬멸하는 식이다. 물론 정공법은 아니다.
전쟁이 일상이었던 시대의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땅을 파고 침입하는 적들을 방어하기 위해 성 주위를 둘러 파 못으로 된 해자(垓子)를 만들었다. 평지 성곽이 많은 일본에는 지금도 이름 있는 성곽 주변에는 해자가 많이 남아 있다. 나가노현에 있는 마쓰모토성 주변의 해자가 대표적이다. 땅 밑을 파는 작업은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전쟁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다. 이런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전쟁은 과학 발전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하는 바가 없지 않다.
최근 중국이 보하이(渤海)해협을 남북으로 잇는 세계 최장 해저터널 건설 방침을 확정했다고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랴오둥(遼東)반도와 산둥(山東)반도를 잇는 총길이 123㎞의 해저터널을 건설하는 비용만 약 45조원이라고 한다. 터널이 완공되면 다롄시 뤼순과 산둥성 옌타이시의 이동시간은 40분으로 단축된다.
바다나 강 아래 만들어지는 해저터널 공사에서 땅을 파는 굴착 작업과 콘크리트 타설 과정인 복공은 지상에서의 공법과 같다고 한다. 문제는 작업장 주변에 물이 엄청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다. 바다나 강의 밑바닥을 파도 다시 물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작업장 위아래가 모두 물에 포위돼 있다. 용수(湧水)와 누수 대책이 따르지 않으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최첨단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해저터널의 노하우에서는 일본이 선두주자다. 세계적인 기술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전국시대 땅굴 파는 기술이 날로 발전해 해저터널 건설로 이어진 것이리라.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터널인 총연장 53.85㎞의 세이칸 터널(혼슈∼홋카이도)을 포함해 도쿄만 횡단도로 터널 등을 자랑한다.
세계 최장의 해저터널을 만들겠다고 나선 중국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느닷없이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우리를 놀라게 한 데 이어 2일에는 달 탐사위성인 창어 3호를 쏘아 올려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 3번째 달 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우주부터 바다 밑까지 온통 중국 세상이 되려나.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