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화상환자, 이젠 감추지 않습니다… 상처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김예지씨
입력 2013-12-03 01:28
“저처럼 몸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불의의 사고였다. 김예지(24·여·서울여대 현대미술과4)씨는 2010년 경기도 성남으로 소풍을 갔다가 식당에서 허벅지에 2도 화상을 입었다. 부실한 받침대 위에 놓였던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넘어지면서 펄펄 끓는 닭볶음탕이 허벅지로 쏟아졌다.
사고 당시 기억도 고통스러웠지만 5주간의 입원과 1년이 넘는 통원치료는 김씨를 더욱 힘들게 했다. 세포이식 수술 후에도 새살은 돋아나지 않았다. 매일 죽어서 하얗게 변한 살을 일일이 걷어내고 그 자리를 소독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어졌다. 김씨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치료가 끝나도 없어지지 않은 상처는 가장 꾸미고 싶은 나이에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길이 20㎝가 넘는 양쪽 허벅지 흉터 탓에 다리에도 비비크림을 바르고 두꺼운 스타킹을 신었다. 흉터는 김씨를 소극적으로 만들었고 우울증까지 겪게 했다.
그러나 대학 생활을 우울하게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던 김씨는 콤플렉스를 정면으로 응시하기로 결심했다. 늘 감추려 했던 상처를 카메라로 찍었고 포토숍 작업을 했다. 이렇게 얻은 ‘화상 흉터 패턴’을 가방과 모자, 휴대전화 케이스 등에 입혔다. 화상 흉터로 만들었다는 걸 몰랐던 친구들은 “예쁘다”며 어디서 얻은 아이디어인지 묻기도 했다. 김씨는 “흉터를 드러내 화상사고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말했다.
상처도 감내하면 아름다움이 된다. ‘아름다운 상처’라고 이름 붙여진 김씨의 작품들은 현재 서울여대 조형예술관 바롬갤러리에 전시돼 있다. 김씨는 졸업 후 교육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화상사고로 휴학을 하고 잠시 아르바이트 삼아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했다.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미술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