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신종수] 밀양과 부안의 차이
입력 2013-12-03 01:33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경남 밀양에서 2000여명이 모였던 ‘희망버스’가 1박2일 동안 큰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마무리됐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주민들의 고통을 위로하며 문화제 성격으로 뒤풀이 행사를 가진 뒤 해산했다.
송전탑 건설 문제가 지난 2003년 전북 부안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사태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큰 고비를 넘긴 듯한 분위기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지만 다시 오더라도 큰 충돌은 이제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밀양 송전탑 사태는 여러 면에서 부안 방폐장과 사안이 달랐다.
밀양 송전탑 큰 고비 넘긴 듯
부안 방폐장은 실패가 예견된 국책사업이었다. 처음부터 지역주민들에 대한 설득 과정이나 여론수렴 과정 없이 전격적으로 발표됐다. 밀양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는 국민권익위원회, 경실련, 국회 중재의 갈등조정위원회, 보상제도개선추진위원회, 전문가 협의체 등이 운영됐다. 합의 도출에는 실패했지만 대화는 꾸준히 시도됐다.
부안 군민들은 대부분 방폐장 유치를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환경·반핵 단체는 불만 댕기면 됐다. 한적한 시골에 경찰 1만여명이 투입될 정도였으니 시위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밀양은 송전탑 선로가 지나가는 5개면 30개 마을 가운데 23개 마을이 지역특별지원사업을 위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7개 마을만 서명하지 않았다. 밀양시 전체의 반대 여론도 많은 편이 아니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사실 따로 있다. 바로 정권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작용하고 있느냐 여부다.
부안 방폐장 사태 당시는 김대중정부에 대한 대북송금 특검,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등으로 노무현정부에 대한 호남의 정서가 악화되는 상황이었다. 부안 주민들은 시위 때 ‘노무현 퇴진’을 외쳤다. 하지만 밀양에서는 ‘박근혜 퇴진’을 외치지 않는다. 오히려 주민들은 ‘박근혜 대통령님께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박 대통령 지지층이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는 외부세력이 아무리 희망버스를 타고 모이더라도 반대투쟁의 불길을 확산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사 강행으로 이미 송전탑 1개가 완공됐다.
그렇다고 정부나 한국전력이 게임이 다 끝난 것처럼 주민들의 사정을 무시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서울대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송전선로 주변 지역의 50세 이상 암 발병률이 일반 지역보다 30%가량 높다는 통계가 나왔다. 통계는 통계일 뿐 의학적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궁색한 논리로 주민들의 걱정을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송전선로를 땅에 묻는 지중화는 건설비용이 많이 들고 공사기간이 오래 걸려 수용할 수 없다 하더라도 주민들의 건강권만큼은 보장해줘야 한다. 돈 몇 푼으로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한전 사장이 직접 송전탑 밑에 살아보라는 송전탑 주변 주민들의 울분도 이해가 간다.
정부 갈등관리 능력 키워야
이번 일을 계기로 갈등 관리에 대한 정부 역량도 키워야 한다. 지난 대선 때 갈린 52%와 48% 유권자를 비롯해 계층과 지역, 이념, 노사, 세대 간 갈등을 해결해가는 노하우를 축적해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회갈등 수준은 OECD 27개국 중 종교분쟁을 겪고 있는 터키 다음으로 두 번째다. 사회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 연간 최대 246조원에 이른다.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갈등을 회피해서도, 부추겨서도 안 될 것이다. 정부 당국은 갈등을 회피하거나 무시하려 하고 진보단체는 부추기려는 경향이 강하다. 갈등을 해결하고 화평에 이르는 것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놓여 있는 중요한 과제다.
신종수 사회2부장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