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샌드위치 한국 외교 시험대에 서다
입력 2013-12-03 01:51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 역할 모색할 때
한반도 주변 정세가 심상치 않다. 이어도를 포함하는 중국의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확대 선포로 동북아에서 긴장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확장된 방공식별구역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중국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미국·일본은 서로를 향해 무력시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선뜻 어느 편에도 설 수 없는 샌드위치 신세가 돼 버렸다.
우리로서도 중국이 새로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이익을 심대하게 침해할 뿐 아니라 우리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선포한 그들의 일방적 주장인 까닭이다. 묵인하면 중국은 이를 근거로 앞으로 있을 한·중 배타적 경제수역(EEZ) 협상 등 양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걸려 있는 분야에서 무리한 요구와 주장을 펼 게 뻔하다. 그렇다고 중국의 보복을 부를 미·일의 무력시위에 동참할 수도 없다. 중국은 최대 경제 파트너다. 싫든 좋든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한국 외교의 딜레마다.
정부는 우리 측 방공식별구역(KADIZ)을 이어도 공역까지 확대키로 방침을 정하고 이번 주말이나 내주 초 쯤 당정회의에서 이를 공식화한다고 한다. 이어도 공역을 방공식별구역에서 제외하라는 우리의 요구를 일축한 중국에 대한 당연한 조치다. 무엇보다 미군이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선포한 KADIZ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이어도는 고사하고 명백한 우리 영토인 마라도 상공이 KADIZ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건 주권 포기나 진배없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건 마라도 상공이 다른 나라 방공식별구역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에 맞게 고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도 미국이 KADIZ를 이어도 공역까지 확대하자는 우리의 요구를 다섯 차례나 거절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문제는 이 같은 미국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KADIZ 확대 조정에 비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KADIZ 확대를 용인할 경우 중국이 일방 선포한 방공식별구역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이 경계하는 건 중국의 팽창이지 KADIZ 확대는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가 미국을 생각하는 것처럼 미국이 우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허용이 보여주듯 미국 외교의 무게 추가 한·미 동맹보다 미·일 동맹으로 기운 건 주지의 사실이다. 기존의 외교 패러다임으로는 복잡다단한 외교 현안을 푸는 데 한계에 다다랐다는 얘기다.
서둘러 새로운 외교 비전을 마련해야 한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를 장점으로 살려야 한다. 미·중 중재자 역할이 그것이다.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이 일본(2∼4일)과 중국(4∼5일) 방문을 마치고 5일 방한한다.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 한다. 중국과 패권경쟁 중인 일본은 그 일을 못한다. 이해관계의 한 축인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도 상통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