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아웃] 기적의 포항 우승 비장의 무기는 ‘형님 리더십’
입력 2013-12-03 01:39
‘황새’ 황선홍(45) 감독이 ‘토종군단’ 포항 스틸러스를 이끌고 마침내 하늘 높이 날았다. 올해 창단 40주년을 맞은 포항은 1일 울산과의 K리그 클래식 최종전에서 승리하며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골이 터진 시간과 상황도 아슬아슬했다. 후반 인저리타임 문전 혼전 중에 해병대 출신 김원일의 오른발에 공이 걸렸다. 무의식 중에 발을 갖다 댄 게 골로 연결됐다. 승리의 여신은 황새 편이었다.
감독 데뷔 6년 만의 쾌거였다. 2013년 축구협회(FA)컵 우승에 이어 이번 시즌 ‘더블’(정규리그·FA컵 2관왕)을 달성했다. 1996년 FA컵 창설 이후 정규리그와 FA컵을 동시에 거머쥔 감독은 한 명도 없었다. 명감독은 탁월한 승부사이자 심리학자다. 대표적인 인물이 2002년 월드컵축구 4강 신화를 창조한 거스 히딩크다. 수제자 황 감독 역시 스승을 빼닮았다.
그는 ‘반쪽짜리 선수’란 오명을 가졌던 황진성을 팀의 에이스로 거듭나게 했다. K3리그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했던 황지수가 프로무대에서 부활한 것도 황 감독의 작품이다. ‘만년 유망주’ 조찬호가 올해 초 이적 문제로 흔들렸을 때 중심을 잡아준 이도 황 감독이다. 결국 조찬호는 홍 감독의 말처럼 환상적인 기술과 드리블로 포항의 윤활유가 됐다. 한때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고무열은 포항의 더블 달성을 이끌었고 ‘K리그 영플레이어상’의 유력한 후보가 됐다.
최고의 지도자들은 팀의 장기적인 비전을 품는다. 포항의 공격과 중원을 책임진 황진성, 이명주, 신진호, 배천석 등 모두 포항제철공고 축구부(현 포항제철고) 출신들이다. 황 감독은 편하게 용병을 영입하는 대신 이들을 조련시키는데 집중했다. 화수분처럼 쏟아진 이들이 곧 포항의 오늘과 내일을 열고 있다.
포항의 전술적 무기는 ‘스틸타카’와 ‘제로톱’이다. 스틸타카는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를 연상케 한다는 의미다. ‘패스 앤드 무브’로 볼을 점유하고 흐름을 장악하면서 좁은 공간을 활용한다. 패스는 공격을 지향하고, 템포 역시 빠르기 때문에 미드필더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최전방 스트라이커 없이도 공격이 가능하다.
‘제로톱’은 공격수들의 부진을 타개하려는 궁여지책으로 만든 전술이다. 하지만 효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미드필더들이 돌아가며 득점포를 터뜨리자 자극받은 공격수들도 제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황 감독은 포용의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다잡았다. 스타선수 출신이 아닌 삼촌이나 형님처럼 다가가 속마음을 다독거렸다. 구성원들 모두가 함께 뛰는 ‘즐기는 축구’를 강조했다. 그 결과 정규리그와 FA컵 동시 석권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