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식별구역 갈등] 정부 ‘카디즈’ 확대 일단 신중 모드
입력 2013-12-03 03:28
우리 측 방공식별구역(카디즈·KADIZ) 확대 안을 잠정 결정했던 정부가 관련 당정협의 및 공식 발표를 놓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당초 3일 당정협의 뒤 이번주 내 공식화할 것으로 예상됐던 카디즈 확대는 일단 관련국들과의 직간접 논의 이후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정부가 시기와 관계없이 카디즈를 확대할 경우 이는 중국의 즉각 반발을 불러오고 그에 따른 한·중 간 갈등은 다시 폭발력 있게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카디즈 확대 숨고르기=정부 관계자는 2일 “카디즈에 대한 관계 부처 간 의견수렴이 된 만큼 대강의 안은 나왔지만 점검해야 할 사항이 적지 않다”며 “국제규범과 상식을 고려해야 하고 특히 (한·미) 동맹을 고려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카디즈를 어느 정도까지 확대해야 실효적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처 간 세부 협의가 끝나지 않았고, 당초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에 대해 강경 대응했던 미국이 한 발 빼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미국의 입장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방공식별구역 확대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갈등이 고조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부의 공식 안은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방한 일정 이후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동북아 순방에 나선 바이든 부통령은 이번 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박근혜 대통령 순으로 한·중·일 3국 정상을 모두 만날 예정이다. 3국 정상과의 만남에선 방공식별구역, 북핵, 한·미동맹은 물론 한·일 관계 개선 방안에 대해서도 두루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고려해 카디즈 소폭 확대?=정부는 이어도의 경우 국민감정을 고려해 카디즈에 포함시키되 중국, 일본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만큼 구역 조정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보인다. 마라도와 홍도(거제도 남방 무인도)는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과 중첩되는 지역 전부를 포함시키는 것보다는 일부 지역만 포함시키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이어도와 마라도, 홍도 수역은 모두 포함돼야 하지만 일부 조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준(準)영공’으로 불리는 방공식별구역에 대한 우리 국익을 최대한 충족시키면서도 중국 등 주변국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도는 한·중 핵심 이익 충돌의 장=그러나 카디즈 확대 발표가 약간 늦춰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어도는 한·중 양국의 방공식별구역 및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획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중국은 이미 1990년대부터 이어도를 자국 해양 전략의 전초기지로 만들려는 야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중국은 1999년 이어도 부근을 탐사한 데 이어 2006년 이어도를 중국식 이름인 ‘쑤옌자오(蘇岩礁)’로 이름 붙였다. 또 2007년 중국 국가해양국 산하 기구에 이어도를 중국 대륙붕 일부로 표기하기도 했다.
이어도는 1996년 시작된 한·중 EEZ 획정 협상의 진전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중국은 이어도가 자국이 설정한 EEZ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면서 우리와 관련 협상을 벌일 때마다 갈등을 빚어 왔다. 따라서 구체적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EEZ 획정 협상이 재개된다면 한·중 양국은 이어도를 놓고 다시 한번 노골적으로 대립할 가능성이 높다.
남혁상 기자,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