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35만명 거리로… “시위 아닌 혁명이다”

입력 2013-12-03 03:28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유럽연합(EU) 대신 러시아와 손잡은 정부를 비판하며 시작한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2004년 ‘오렌지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군중이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퇴진까지 요구하고 나섰고, 경찰이 무력진압에 나서면서 유혈 사태로까지 치닫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최대 35만명에 이르는 성난 시위대는 1일(현지시간) 푸른색 EU 깃발을 들고 ‘혁명’ ‘폭력배 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며 수도 키예프 중심가의 독립광장으로 향했다. 시위는 야권 인사들과 젊은이들이 주도했다. 화염병이 여기저기 날아다녔고, 대통령궁 인근에는 불도저마저 등장했다. 시위대는 독립광장에 세워진 크리스마스트리에 우크라이나 국기와 EU 깃발을 꽂았다. 극우 민족주의 성향 야당인 자유당 당원 수십명은 텅 빈 시청 건물을 점령한 뒤 ‘혁명본부’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경찰은 섬광탄과 최루탄을 동원해 맞섰다. 이 과정에서 경찰 100명 정도와 시위대 수십명이 다쳤다. 시위대의 지도자격인 유리 루첸코 전 내무장관은 “더 이상 시위가 아니라 혁명”이라며 “오늘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장례식”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23년 전 국민투표로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결정한 날이다.

이번 시위는 지난 21일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EU와의 협력협정을 철회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협정이 체결되면 양측 간 관세의 95%가 없어지고, 사람과 자본의 왕래도 대부분 자유화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관세동맹을 맺으려던 러시아가 제동을 걸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EU 경제권에 포섭되려 하자 불만을 표시하며 무역 규제 등의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EU와 협력협정을 시작한 이후 우크라이나산 철강제품 등의 수입을 중단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지난해 러시아 수출액이 170억 달러(약 17조9690억원)에 이르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보복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EU는 우크라이나가 EU와 협력협정을 체결할 경우 무관세로 인한 이익이 연간 5억 유로에 달할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이 액수는 러시아의 무역 제재와 천연가스 공급 중단 등으로 인한 손실을 메우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서구식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화를 바라던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러시아의 압력에 무릎 꿇은 정부를 규탄했다.

다른 동유럽 국가들 상황도 비슷하다.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도 EU와의 협력협정을 거부했다. 조지아와 몰도바는 EU와의 협력협정을 검토 중에 있지만 러시아가 이들 국가에 본격적인 제재에 착수할 것으로 보여 최종 체결까지 가는 과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EU는 동유럽 국가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한 전략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U는 당초 우크라이나와 협력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 석방과 사법체계 개선 등 민주화 개혁을 요구했지만 이를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우크라이나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유럽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경제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러시아가 이들 국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막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U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시위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정부에 대해 일부 책임자들을 선별적으로 제재하는 ‘스마트 제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EU 전문매체 EU옵서버가 보도했다. 양국 간 협력협정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적극적 제재를 취할 경우 내정간섭으로 비쳐 협정 체결이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