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칼럼] 한 새사람
입력 2013-12-03 02:40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5절에서 ‘한 새사람(One New Man)’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을 허물어 양쪽의 무리를 하나로 만드셨다면서 한 새사람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나타내는 새로운 백성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적대감과 갈등으로 화해할 수 없었던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이 되는 것, 즉 새로운 연합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게 바울의 설명이다.
최근 방문한 이스라엘 성지에서 ‘한 새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짧은 방문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들 간의 연합뿐 아니라 이스라엘 내에서 사역하는 한국인 크리스천들, 아니 이스라엘을 위해 마음을 품은 한국인들 사이의 하나됨이 절실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예루살렘을 비롯한 성지에는 많은 한국인 ‘순례 관광객’뿐 아니라 이스라엘 땅을 품은 한인 사역자들이 적지 않다. 한인 사역자들 가운데는 교단이나 각종 선교단체에서 파송된 선교사들 외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그 땅에서 단기, 혹은 중·장기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현지에 오랜 기간 머물고 있는 ‘공식’ 선교사들은 이들을 ‘기도자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번 방문 기간에도 양쪽 진영의 한인 사역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동일하게 이스라엘을 마음에 품고 있지만, 이들의 생각과 사역의 패턴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다. 현지에 장기간 머물고 있는 한인 선교사 가운데는 소위 ‘기도자들’에 대한 불신을 품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스라엘 회복’을 외치면서 기도를 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기도는 하지만 삶이 받쳐주지 않아서 현지인들과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뼈를 묻을 각오로 선교지에 와야 하는데 ‘기도하고 떠나고’를 반복하니 사역이 뿌리 내리지 못합니다. 그들로 인한 후유증은 현지에서 사역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이 고스란히 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선교사의 말이었다.
또 다른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기도자들)은 너무나 작은 부분에 집착하고, 만나는 부류들도 극히 제한적입니다. 그러다보니 이스라엘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부족합니다. 그들의 이야기와 경험이 가감 없이 전해지다 보니 이스라엘에 대한 왜곡된 이해가 한국교회에 확산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솔직히 이스라엘에서는 지금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현재 예루살렘 동서남북 각 지역에는 이스라엘 회복을 위한 기도의 집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눈동자’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해 주님의 다시오심(재림)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생명을 건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다.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주님의 초림 때에도 사람들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면서 “지금은 마지막 때로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만나 본 양쪽 모두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의 거리감은 엄존한다. 이것은 현실이다. 이스라엘 내 사역자들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한국교회 내 각 진영의 시각에도 큰 차이는 존재한다. 이스라엘과 관련, 모든 생각과 신학의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한 새사람’의 정신은 가능할까. 짧은 이스라엘 방문을 통해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