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스러움과 고상함 사군자가 미소 짓는다

입력 2013-12-03 01:36


수묵화 운동 주도했던 故 송수남 화백 사군자 전

“장례식에는 모두가 화사한 복장으로 꽃을 들고 생전의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참석했으면 좋겠습니다. 화사한 복장이 아닌 일반적인 조문객 복장으로 찾는 분들은 죄송하지만 사절합니다.” 지난 6월 8일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동양화가 남천(南天) 송수남 화백이 유족을 통해 전한 당부였다. 조문객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복장으로 웃으면서 고인을 떠나보냈다.

전북 전주 출신인 남천은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했으나 4학년 때 전공을 동양화과로 바꿨다. 단순하지만 간결하고 깊이 있는 수묵화를 그렸다. 평소 그는 “한국 사람은 한국의 것을 그려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수묵화는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전개해 나간 것이다. 홍익대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하던 1970∼80년대에는 수묵화 운동을 주도했다.

스웨덴 국립동양박물관 초대전을 비롯해 30여 차례 개인전을 가진 그는 일본 도쿄국제비엔날레, 브라질 상파울로국제비엔날레, 대만 국제현대수묵화전 등 숱한 국제전에 참여하며 한국 전통 수묵화를 알리는 데 힘썼다. 이런 노력으로 “전통 수묵화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토대로 현대적 조형성을 추구하며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4년 교수직을 퇴직하고는 화려한 꽃 그림을 그렸다. 작가는 당시 서울 평창동 작업실에 꽃을 키우면서 “나이도 들어가고 하니 색이 있는 꽃 그림이 좋다”며 숨지기 직전까지 ‘flowers(꽃들)’이라는 제목의 작품에 매달렸다. 화단에서는 “수묵화를 통해 한국적 미학을 선보인 작가가 울긋불긋 꽃 그림이라니”라며 그를 비판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자유분방한 예술세계를 펼쳤다.

그러는 중에도 그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의 ‘사군자’를 틈틈이 그렸다. 사군자는 동양수묵화의 기본이며 선비의 정신을 표상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져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던 문인화이다. 남천도 자신의 예술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사군자 그리는 일을 등한시하지 않았다. 전통 수묵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라 사군자를 통해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2000년대 중반에 그린 그의 사군자 90여점이 4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전시된다. 노화랑의 노승진 대표가 남천의 작업실에 우연히 들렀다가 사군자 그리는 모습을 보고 일괄 구입해 이번에 첫선을 보이게 됐다. 소탈하고 격의 없는 작가의 성격과 너털웃음이 사군자에 그대로 녹아들어 보는 이들에게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하는 작품들이다.

자유로운 붓놀림과 붉은 색을 사용해 그린 국화는 어여쁜 자태를 뽐내고, 검고 길게 뻗은 대나무는 힘이 넘친다. 작은 괴석 옆에 수줍게 피어난 난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지 잎을 위로만 세우고 있다. ‘꽃 속에 내 마음이 있고 내 마음속에 꽃이 있네’라는 화제(畵題)를 쓴 매화는 기품이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여유와 안정을 선사하는 청량제 같은 그림들이다(02-732-3558).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